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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를 기다리며 위고는 '이위전의 고양이'라는 뜻이다. 이위전은 사람 이름이고, 내가 지금 잠시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집의 주인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는 집에 앉아서 커피와 함께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소리다. 이 위고라는 친구는 겁이 많고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아서 (대개 고양이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 같이 보여도 조금이라도 부시럭 거리면 바로 귀를 쫑긋거리며 몸을 움찔거리기 때문에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최대한 작은 몸짓으로 행동해야 한다. 평생 고양이의 요주의 경계대상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작은 노하우는, 최대한 고양이님에게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게 조용히 지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점이다. 한때는 괜히 쓰다듬고 장난치고 싶어서 좋아한다는 .. 2022. 4. 14.
좋아한 것들 #03 장편 소설을 선택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가고 있는 탓에 이번엔 좋은 책을 한 권도 뽑을 수가 없었다. 이 리스트에 넣을 작품 개수는 적지만,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들이 몇 개 있었다. 음악 01. 리코리쉬 피자 OST 영화도 좋기는 했지만 마냥 행복하게 바라볼 수는 없었던 경험 탓에, 결국 음악만 되새기게 되었다. 이야기를 뺀 영화의 장면들은 너무나 아름답기에, 음악을 들으면서 뮤직비디오 스틸컷처럼 머리에 떠올리기 좋다. 02. 진수영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피크닉의 동명의 사울 레이터 전시를 위해 의뢰해서 만든 앨범이 있었다. 음악의 멜로디 하나하나가 좋다기보다는, 차분하고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피아노곡으로써 활용하기 좋았다. 독서할 때, 잠들 때, 누워서 쉴 때 BGM으로서 자주 들었.. 2022. 4. 11.
이야기를 그려내는 도구로서의 게임 게임에 대한 첫 기억은 유치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잘 없는 나에게도 선명히 남아있는 강렬한 기억 중 하나는 어떤 작은방 속의 풍경이다. 항공대학교 근처에서 하숙집을 운영했던 우리 집에는 대학생 형들(아마도)이 항상 있었는데, 당시 그 형들 중 하나가 쓰는 작은방 컴퓨터 CRT 모니터로 본 첫 번째 게임이 바로 였다. 맞다, 나치를 쏴 죽이는 게임인 그 울펜슈타인. 어린 시절에 몰입해서 구경하기에는 너무나 잔혹한 게임이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대개는 옆에서 구경만 했던 것 같지만... 가끔씩 자리를 비켜준 형들 덕분에 직접 키보드를 눌러 적을 쏘고, 문을 열고 돌아다닐 때 느껴지는 긴장감과 쾌감이 지금 기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년기의 기억이.. 2022. 4. 7.
성장한다는 감각 일을 잠시 쉬기 위해 스케줄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몇 가지를 시작했다. 더 나은 정신을 위한 상담, 새로운 카메라로 사진 찍기, 보컬 레슨. 작년 말부터 해오던 필라테스도 마침 새로운 선생님과 함께하면서 새로운 감각과 새로운 고통으로 헤쳐 나가고 있으니 이것도 리스트에 포함할 수 있다면 네 가지나 된다. 계획하고 결정한 것들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체득한 노하우가 제 역할을 발휘한 걸 수도 있겠다. 바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그 행위 자체로,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된다는 것. 어떤 분야든,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그것을 반복하면 점점 나 자신이 성장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전에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즐거운 기분은 막막했던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릿속에 잠시 새로운.. 2022. 4. 1.
과거를 들여다보기 #1 지금은 리모델링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독립하기 전 내 방. 그 곳에는 어린 시절 이사 들어올 때부터 자리를 지켜온 오래된 책장 일체형 책상이 있었다. 왼쪽에는 키보다 높은 책장과 작은 서랍들로 구성되어있고, 가로로 이어진 상판에는 컴퓨터를 놓을 수 있게 슬라이드 키보드 서랍과 지지대로 3단 서랍이 붙어 있는 투박한 책상. 25년 정도 내 방에 존재하면서 실제로는 책상으로 활용했던 기간보다 물건을 적당히 쌓아 올려놓는 지지대 역할을 한 기간이 아마도 더 많을 물건. 작은 서랍을 뒤지다 보면 초등학교 시절 가정통신문 같은 게 나올 것 같은 (실제로 비슷한게 나왔다.) 내 방에서 제일 방치된 공간. 그 낡은 책장의 책상 바로 윗 칸에는 내가 사용했던 연습장들이 빽빽하게 가득 차 있는 칸이 있었다. 나름대로 .. 2022.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