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Amore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이름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대충 시부야 케이나 누자베스류의 일본발 음악을 찾아 듣던 시기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으레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내가 빠져드는 계기가 된 곡은 'Merry Christmas Mr. Lawrence'였다. 들었을 당시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영화음악인 줄도 몰랐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한결 더 신비로워 보였던 제목으로 수많은 상상을 하게 하곤 했었다는 것이다. 어떤 감정을, 어떤 상황을,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만든 곡일지 상상하는 일 말이다. 그 당시의 나는 지금 현재에 비할 수 없는 몽상가(또는 망상가)였음을 알 수 있다. 연주를 듣고 있으면 대개는 눈이 내리는 넓은 평야를 상상하곤 했던 것 같다. 그 이후 몇 년간 .. 2023. 4. 3. 잉크와 총탄 2022년 9월, 자주 같이 콘솔게임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친구들 중 한 명의 제안으로 새로운 게임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총알 대신 잉크를 쏘며 플레이하는 게임 였다. 정신없는 빠른 경기 템포, 언제든 일발역전이 가능한 시스템, 승패가 킬 수가 아니라 팀 색깔로 칠해진 땅의 면적으로 결정되는 시스템 등을 처음 접했을 당시엔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지금껏 경험했던 타 게임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캐주얼한 플레이 감각에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에 빠져들었다. 단 3분 안에 게임이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시스템의 영역 배틀은 압도적으로 밀려서 패배하거나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부정적 경험의 양을 줄이고 '그럼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 판 더?'의 마음으로 게임을 계속할 수 있는 의욕.. 2023. 2. 26. 공항으로 갈 땐 언제나 프롬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 등엔 배낭, 한 손엔 캐리어. 땀이 흘러내리지만, 이 길에서만큼은 불쾌하지 않고,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있어 에어팟을 귀에 끼운다. 나는 공항으로 갈 때 언제나 프롬Fromm의 음악을 듣는다. 2013년 발매된 1집 의 트랙 중 마음이 내키는 곡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 앨범의 첫 트랙 '도착’은 첫 도입부부터 낯선 도시에 서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다. '마중 가는 길'이라는 트랙은 '도착'과는 반대로 제목에서부터 멀리 떠나오는 이(또는 멀리서 돌아오는 이)를 반기러 공항으로 달려가는 것 같다. 지금 처음 들었다면 오래 듣진 않았을 수도 있을 스타일의 곡이지만, 2013년쯤의 나는 몇 번이고 이 앨범을 돌려 들었.. 2022. 7. 1. 이야기를 그려내는 도구로서의 게임 게임에 대한 첫 기억은 유치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잘 없는 나에게도 선명히 남아있는 강렬한 기억 중 하나는 어떤 작은방 속의 풍경이다. 항공대학교 근처에서 하숙집을 운영했던 우리 집에는 대학생 형들(아마도)이 항상 있었는데, 당시 그 형들 중 하나가 쓰는 작은방 컴퓨터 CRT 모니터로 본 첫 번째 게임이 바로 였다. 맞다, 나치를 쏴 죽이는 게임인 그 울펜슈타인. 어린 시절에 몰입해서 구경하기에는 너무나 잔혹한 게임이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대개는 옆에서 구경만 했던 것 같지만... 가끔씩 자리를 비켜준 형들 덕분에 직접 키보드를 눌러 적을 쏘고, 문을 열고 돌아다닐 때 느껴지는 긴장감과 쾌감이 지금 기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년기의 기억이.. 2022. 4. 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