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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 것들 #03

by 서곡 2022. 4. 11.

장편 소설을 선택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가고 있는 탓에 이번엔 좋은 책을 한 권도 뽑을 수가 없었다. 이 리스트에 넣을 작품 개수는 적지만,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들이 몇 개 있었다. 

 

음악

01. 리코리쉬 피자 OST

영화도 좋기는 했지만 마냥 행복하게 바라볼 수는 없었던 경험 탓에, 결국 음악만 되새기게 되었다. 이야기를 뺀 영화의 장면들은 너무나 아름답기에, 음악을 들으면서 뮤직비디오 스틸컷처럼 머리에 떠올리기 좋다. 

 

02. 진수영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피크닉의 동명의 사울 레이터 전시를 위해 의뢰해서 만든 앨범이 있었다. 음악의 멜로디 하나하나가 좋다기보다는, 차분하고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피아노곡으로써 활용하기 좋았다. 독서할 때, 잠들 때, 누워서 쉴 때 BGM으로서 자주 들었다. 애초에 BGM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라 그런지!

 

03. Noga Erez - Kids (Bonus Edition)

멋진 라이브 영상을 보고 듣게 된 이스라엘 뮤지션. 쿨한 룩으로 음악을 들려준다. 

 

영상

01. 귀를 기울이면

내가 제대로 챙겨보지 않았던 지브리의 영화들을 종종 본다. 그간의 이미지로는 단순한 청춘 로맨스물이겠거니 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풍부한 이야기가 좋았던 애니메이션. 창작을 시작할 때의 생각과 느낌들, 음악 모티브를 활용한 것, 작중작을 활용해 현실의 이야기에 환상을 넣는 방식, 그것을 구현하는 수작업 애니메이션 특유의 따뜻함, 창작의 결과물을 만들고 난 후의 깨달음 장면들이 잘 녹아있다. 지브리 명작 순위를 꼽는다면 상위권에 들어갈 것 같다. 

 

02. 드라이브 마이 카

내게 큰 영향을 끼친 영화들을 꼽으라고 한다면 앞으로 꼭 들어갈 것 같은 작품. 이 영화가 필요한 정확한 시기에 영화를 보게 된 것 같다. 이 감독의 전작 해피아워의 5시간짜리 러닝타임을 보고 부담이 되어 안보고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왜 이 감독이 러닝타임을 길게 만드는지 그 필요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느린 호흡으로, 긴 장면을 보여주면서 만들어내는 작은 디테일들을 쌓아 올려서 풍부한 이야기를 엮어내는 작품이다. 미사키(미우라 토코 배우)의 눈빛, 이유나(박유림 배우)가 수화로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를 전달할 때, 그리고 그 수화를 극적으로 활용하는 마지막 무대 장면, 그리고 다시 그것을 바라보는 미사키의 눈빛. 질문을 던져야만 할 타이밍에 그렇게 하지 못했더라도, 묵묵히 살아나가 언젠가 어떤 시점에 다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질문을 꺼내 던져야 한다. 

 

03. 조인 마이 테이블

국내 도시의 이민자들의 식탁을 찾아가는 기획이라니, 기획부터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이금희 씨의 나긋한 말투가 이 방송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데, 제작진의 시선도 마찬가지여서 6화를 다 보고 나면 다음 시즌 제작을 기다리게 된다. 

 

04. 해밀턴 

린 마뉴엘 미란다의 여러 작업물들을 보면서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기에,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의 한글 자막이 드디어 올라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보게 되었다. 왜 2016년 즈음에 이 작품으로 떠들썩해졌었는지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작품. 영어 랩의 펀치 라인과 뉘앙스를 자막 없이도 캐치할 수 있는 영어 실력이 못되어서 너무 아쉬울 뿐.

 

특히나 'Satisfied'의 연출이 제일 인상적이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되감는 연출을 갑작스레 활용하는 뻔뻔함이 좋기도 하고, 노래를 이끌어가는 안젤리카 스카일러(러네이 앨리스 골드베리 배우)의 실력도 정말 대단하기 때문. 뮤지컬에서 빠질 수 없는 직전에 나온 'Helpless'의 모티브를 활용하는 지점도 좋고, 앞서 나온 장면과 그 대사들을 재활용하는 템포 또한 좋다. 그리고 제일 좋은 것은 바로 앞서 나온 장면에서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은 정보를 끼워 넣으면서 '사실은 이랬던 거구나'를 보여주는 연출을 다른 매체도 아니고 뮤지컬 노래 한 곡에서 다 해낸다는 점이다. 

 

그 밖에도 역사적 인물 서사에서 약할 수밖에 없는 여성 캐릭터의 비중을 기가 막힌 장치를 통해 힘을 실어주는 방식이 감탄스럽다. '알렉산더 해밀턴의 부인'의 역할 위주로 기록되었을 것이 뻔한 일라이자 해밀턴(필리파 수 배우)의 가사에서 '나를 이 서사에서 지울래, 미래 역사가들이 일라이자의 반응을 궁금해하겠지'라는 말로 시작해 '이 세상은 내 마음을 볼 권리가 없어'라는 말로 이어내면서 강력한 의미를 만들어 버린다. '누구의 무엇'의 역할로 기록되었을 인물이 자신의 선택으로 그것을 결정한 것으로 인식을 근본부터 바꿔버리는 마법.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극의 마지막 노래에서 일라이자 해밀턴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으로서 이 서사에 능동적으로 다시 참여해 이 이야기의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이 된다. '누가 살고 누가 죽고 누가 당신의 이야기를 전달할까?'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장치다. 

 

다른것들

01. 페스티벌 선우정아 : Burst It All

터트려 (Burst it all)은 정말 라이브로 들어야 하는 곡이더라. 공연장에서 큰 볼륨으로 터져 나오는 사운드로 체감을 해야 한 이 곡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노래들이 음원과 다른 공연용 편곡으로 연주되었는데 그래서 공연 내내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고 온전히 즐거울 수 있었다. 클래식, 순이-구애, 도망가자, 동거-백년해로, 그러려니, City Sunset이 특히 좋았고 삐뚤어졌어를 못 들은 것이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터트려를 총 세 번이나 연주할 줄은 예상 못 했기 때문에, 앵콜곡 City Sunset에 이어서 터트려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마지막 연주에 들어갈 때 기분 좋게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 

 

02. 드라이브 마이 카에 등장한 '바냐 아저씨'의 대사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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