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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9 - 10.21] 베트남 하노이 출국하기 며칠 전부터 확인한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았다. 계속 맑은 날씨에 최고기온 30도 정도를 유지하던 날씨가 내가 하노이에 머무르는 단 3일간 약속이라도 한 듯 내내 비가 오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최고기온은 뚝 떨어진 20도. 이게 대체 무슨 불운이지? 하지만 이미 결정한 일정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외투와 비바람을 막아줄 카메라 가방을 챙겨서 비행기를 탔다. 덕분에 짐을 줄이지 못하고 위탁수하물 추가 결제를 해야 했지만 사소한 일에 열을 내기에는 이번 일정의 무게가 막중했다. 비교적 금방 이동하는 중국이나 일본도 아니고 4시간 30분이나 걸리는 베트남을 2박 3일이라는 짧은 일정에 가는 이유는 이 여행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는 워크숍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보고 있는데,.. 2022. 10. 21.
메모 #1 긴 글이 되지 못할 메모들. - 유독 사소한 약속만을 잘 기억하는 사람은 말하지 못한 실망감에 조금씩 몸이 젖고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것들이 쌓여서 무시할 수 없는 배신감이 된다. + 표정이 없는 사람의 표정은 다른 사람이 바라는 감정으로 오독되기 쉽다. 나는 몇 번이고 내가 웃지 않은 농담에 웃은 사람이 되고 몇 번이고 내가 무시하지 않은 의견을 무시한 사람이 되곤 한다. + 절대로 다시 성립되지 않을 순간을 머릿속에서 떨치는 것이 힘든 나날이다. 고통을 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데 고통은 왜 계속 느껴지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유가 정말 존재한다면 필연적으로 내가 범인인 일이라 다른이 누구에게도 탓할 수 없다. + …아니 사실 나는 그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다. + 내가 딛고 있는 땅을 다.. 2022. 10. 17.
좋아한 것들 #09 한 달 내내 다소 온전히 무언가에 몰입하기 싫은 기분이었다. 어떤 것이든지 적당히 듣고, 적당히 봤다. 감상할 작품을 고르는 데에도 영향을 미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나를 몰아세울 작품은 피하고 느긋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즐겼다. 그 때문에 접한 컨텐츠는 많은데 이 글에 적을 만한 것들은 많지가 않다. 음악 01. Whitney - Spark 앨범 설명글을 보자면 아티스트를 '빈티지와 모던 사이 위치한 충실하고 신중한 클래식 팝/R&B 듀오 WHITNEY'라고 소개하고 있다. 정말이지 그렇다. 파괴력이 있는 트랙들을 선사하는 뮤지션은 아니지만 매 앨범이 듣기 편안하다. 이번 앨범도 그렇고, 어떤 트랙이 참 좋다고 꼽기는 힘들지만 가끔씩 오랫동안 듣게 될 앨범. 02. HYBS - Making S.. 2022. 10. 4.
태풍이 지나가고 여름이 끝났다고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느지막이 찾아온 몇 개의 태풍이 지나가고, 추석이 한참 지난날들 답지않게 습했던 공기가 거짓말같이 선선해진 오늘에야말로 드디어 이번 여름이 끝났다는 감각이 피부로 느껴진다.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오면 밤 풍경이 펼쳐지고, 차가운 커피를 시키기 전에 한번은 고민을 해봐야 하는 시기. 더운 시절 내내 방에 걸어만 두었던 헤드폰으로 귀를 덮어도 땀이 나지 않는 시기. 드디어 올해의 괴로움을 하나 덜어냈다고 느껴지는 오늘에야말로 지난여름을 되짚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가 아니라 계절기를 남긴다고 해야 할까. 지난 추석에 잠시 가족모임을 가지러 본가로 돌아갔을 때 '등이 많이 펴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평생을 구부정한 등으로 살아왔던 내가 작년부터 유지해.. 2022. 9. 20.
세줄요약의 슬픔과 슬픔 숏폼 컨텐츠의 시대다. 그렇다고들 한다. 무심코 설치해본 틱톡을 켰다가 정면으로 맞닥뜨린 유해함의 해일을 온몸으로 받아내 버리고선 잠시 누워 미래 세계를 상상했다. 이것이 정말 미래인가... 그렇다면 나는 이 흐름에 최대한 더디게 탑승해야겠다. 하지만 굳이 틱톡이나 릴스를 켜지 않는다고 해도 점점 짧아져만 가는 사람들의 인내심은 이곳저곳에서 드러난다. '숏폼'이라는 단어가 수면위로 떠오르기 전부터 조금이라도 문장이 긴 인터넷 텍스트의 댓글에는 '세줄 요약'을 바라는 댓글이 항상 존재했다. 영화의 내용을 몇 분 만에 요약해주는 유투버들이 즐비하고, 실제로 어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물어보니 영화 요약본을 봤다는 대답을 들은 경험을 실제로 겪기도 했다. 긴 컨텐츠를 짧게.. 2022.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