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오늘은 두 가지 스케줄이 예정되어 있었다. 오후 3시의 필라테스 수업과 그 수업이 끝나자마자 이동해서 어제 예약해둔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는 일정. 아마도 그러고 나서 저녁을 먹으면 오늘 하루도 얼추 마무리될 것이다. 일단 오전부터 오후 2시까지 특별히 정해둔 일이 없으니 무엇을 할까 침대에서 고민하다 좀 괜찮은 공원을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치민 두 번째 날 7군의 공원을 잠시 들렀던 것이 좋은 느낌이었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호치민 + 공원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통일궁 근처의 '따오단 공원'이 제일 유명한 공원인 듯싶었다. 마침 호텔에서 걸어가기에도 적당한 거리다. 카메라를 챙기고 조식을 여느 때처럼 든든히 먹은 후 호텔 밖으로 나섰다.
즉흥적으로 결정한 목적지였는데 마침 호텔에서 따오단 공원까지 향하는 루트가 '식물을 구경하는 산책'으로서 제법 완성도가 있었다. 호치민 노트르담 대성당 측면부터 시작하는 공원 길부터, 통일궁의 옆 울타리를 따라 돌아 따오단 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이 모두 우거진 나무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도심 속에 자리 잡은 식물들을 구경하기에 적당한 루트였다. 베트남의 나무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크다. 역시 일 년에 절반은 차갑고 건조한 한국에 비해 기본적인 성장 한계선이 다른 듯하다. 따오단 공원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나무가 우거져서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영역이 적어 조금 시원한 느낌이었다. 벤치에 앉아서 쉬는 사람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 삼삼오오 모여서 뭔지 모를 연습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여행 중 자주 보았던 제기로 족구를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다꺼우 (đá cầu)라고 하는 듯하다. 동작이 능숙한 사람은 단순히 발을 앞으로 올려 차는 게 아니라 뒤로도, 옆으로도, 공을 보지 않고도 멋지게 찬다.
공원 외곽을 따라 걸으니 꽤 큰 개가 보였는데, 상점인 것으로 보이는 곳 입구를 향해서 멀뚱하게 머뭇거리며 계속 서 있었다. 상점 안쪽에서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작은 개의 것으로 추정되는 짖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안쪽에서는 줄기차게 짖어대는데, 밖에 있는 큰 개는 딱히 공격적인 제스쳐는 취하는 것 같지 않아 보였고 계속 안쪽이 궁금한 듯했다. 사진을 찍고 잠시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는데 발걸음을 돌리기 전가지 5분이나 이상한 대치 상태를 지속하고 있었다. 너무 심심했거나, 상점 안쪽의 뭔가가 너무 궁금했거나 한 거겠지. 그러고 보니 베트남의 강아지들은 대개 목줄을 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람이 많은 밤의 번화가에서 주인과 같이 나온 강아지들 정도는 목줄을 하고 있지만, 길거리 상점에서 기르는 강아지나, 골목길을 지나다니는 강아지들은 대개 자유롭게 지내는 듯. 목걸이는 대부분 하고 있으니 주인이 있는 개인 것 같은데도. 다행히 대개는 더위에 늘어져 있어 지나가는 사람에 신경을 안쓰고 있기 때문에 무섭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그러고 보니 개에 비해선 고양이는 의외로 몇 마리 못 본 것 같네.
공원 탐색을 마치고 호텔로 걸어오는 길에 미술관 근처 작은 공원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널 타이밍을 재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정면 공원의 큰 나무를 가리키며 '200 years, very old'라고 묻지 않은 정보를 말해주는 사람은 역시나 야자를 이고 다니면서 파는 아저씨였다. 딱 봐도 순수한 마음으로 알려주는 게 아닌 것이 보여서 손바닥을 보여주면서 됐다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길을 건너 공원으로 들어서는데 이 아저씨는 노련하면서도 끈질겼다. 나를 보더니 단번에 '아 유 코리안?'이라고 물으면서 딱히 부정하지 않으니 '아이 러브 박항서, 위 러브 박항서'라는 멘트를 날리면서 계속해서 옆으로 따라왔다. 너무도 뻔한 수작인 것을 알았으나 '아이 러브 박항서'가 재밌었던 나는 잠깐 웃으면서 아저씨의 야자를 하나 사줬다. 가격은 역시나 5만 동이나 했지만 (한화로 2,500원이지만 여기 물가를 감안하면..) 그러려니 하는 마음가짐으로 웃으며 헤어졌다. 야자 아저씨는 헤어지면서도 '저기가 미술관이고 저리로 가면 뭐가 있어'라고 투철한 직업정신을 보여주었다. 왠지 모르게 홍대의 막걸리 아저씨가 생각났다. 막걸리 아저씨한테 인사했다가 갑자기 시작된 가위바위보에 져서 막걸리 두 통을 샀던 기억이.
점심은 껌 땀(Cơm tấm)을 먹었다. broken rice라고 하는 부서진 쌀알로 지은 밥 위에 우리에게 익숙한 갈비 맛인 고기를 얹어주고, 같이 먹을 야채가 곁들여 나오는 간단한 음식이다. 그만큼 가격도 저렴한 요리. 이번 여행에서 '마이 반미'와 호텔 조식에 너무 만족해서 자주 먹지 않았다면 껌 땀을 아침으로 자주 먹었을 것 같다. 나는 유명하다는 곳(Bánh Cuốn Hồng Hạnh)에 찾아가서 먹긴 했지만, 이후에 길을 다니면서 유심히 보니 쌀국수나 반미와 마찬가지로 길거리에 껌 땀을 파는 식당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잠시 호텔로 돌아와서 쉬었다가, 예정된 스케줄을 소화하러 7군 푸미흥으로. 3시에 필라테스 예약이 되어있었는데, 일부러 조금 일찍 출발해서 근처 스타벅스에 앉아 여행기를 쓰기 시작해봤다. 여기서 쓴 글이 이 베트남 여행기의 첫 번째 글이다. 정말 처음으로 써보는 여행 기록이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여기에 앉아있던 한 시간 넘는 시간동안 글 하나를 업로드하지 못했다. 이럴 수가. 여행지에서 빠르게 여행 기록을 쓰면서 지낸다는 것이 '여유로운 여행자'의 이미지였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구나. 꽤 부지런하게 써내야 여행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어슴푸레하게 사라지기 전에 다 써낼 수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이 순간 이후로 위기감을 가지고 틈틈이 계속 써보고 있다. (지금 이 부분의 글은 한국에 와서야 쓰고 있음)
정해진 시간에 센터를 방문해 필라테스를 역시나 힘겹게 마치고, 어제 예약해둔 'Sả Spa'로 그랩을 잡아타고 이동했다. 대망의 3시간 트리트먼트 시간. 결과적으론 그저 그랬다. 확실히 태국의 마사지에 비해서 베트남에서 받는 마사지는 근육을 강하게 눌러 시원하게 풀어준다는 느낌 보다는 부드러운 압력으로 기분 좋게만 만들어준다는 느낌? 물론 마사지를 떠나서 3시간이나 대접받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지만, 관리사의 실수로 살짝 트러블이 있었다. 내가 고른 패키지에는 '헤어 스파' 항목이 분명히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받지 않은 상태로 관리가 끝나 대기실로 안내받은 것. 확실히 시간도 2시간 30분 정도 만에 끝났길래 직원에게 문의하자 잠시 확인하더니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헤어 스파를 받았다. 그런데 헤어 스파라는 게 뭐 따로 전문가가 하는게 아니라 나를 담당했던 관리사가 그대로 머리를 감겨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딱히 기술적으로 새로운 느낌도 없었다. 관리가 완전히 나쁘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비교적 고급 스파에서의 3시간 경험에서 기대한 수준에는 못 미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뭐,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대기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저녁을 뭘 먹을지 검색했다.
베트남에서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찾던 중 반쎄오가 떠올랐다. 사실 반쎄오라는 음식은 베트남 요리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지금껏 이걸 먹고 정말 맛있다고 느껴 본 적은 한 번도 없기에 내 우 순위에서 밀려나 있던 음식이다. 하지만 이제 먹고 싶은 건 다 먹었으니 한번 더 시도해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주변에 반쎄오 맛집이라고 하는 'Bánh Xèo 46A'가 스파에서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 가볼 수 없지. 흔히 핑크 성당이라고 하는 떤띤 성당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간 곳에 위치한 Bánh Xèo 46A'에 도착하자, 환한 불빛 아래 사람들이 잔뜩 모여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행히 두 테이블 정도 비어있어서 자리로 안내받았다. 제공된 영어 메뉴판을 보고 반쎄오 엑스트라 사이즈를 시키고 주변을 둘러보니 몇 테이블을 제외한 대부분이 현지인들 위주의 손님인 듯싶었다. 이러면 좀 믿음이 가지. 먼저 제공된 채소를 이제는 익숙하게 손질해놓고, 나중에 나온 반쎄오와 함께 상추에 싸서 소스에 찍어먹었다. 아 반쎄오 맛이 이랬었지. 맛있지만, 동시에 엄청 맛있는 맛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반쎄오 자체가 잔뜩 기름이 먹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절반 이상 먹자 조금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먹었던 반쎄오에 비해서는 재료도 큼직하고 먹을만 한 듯 해서 조금 노력을 더 해서 전부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시간은 8시를 훌쩍 넘겨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다시 걸어서 호텔로 돌아간 후 기묘한 이야기 시즌4의 마지막 에피소드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4'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6.28 - 07.04] 베트남 호치민 #07 (0) | 2022.07.10 |
---|---|
[2022.06.28 - 07.04] 베트남 호치민 #06 (0) | 2022.07.09 |
[2022.06.28 - 07.04] 베트남 호치민 #04 (0) | 2022.07.07 |
[2022.06.28 - 07.04] 베트남 호치민 #03 (0) | 2022.07.04 |
[2022.06.28 - 07.04] 베트남 호치민 #02 (0) | 2022.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