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다. 미리 신청해둔 출장 RAT 검사 시간이 오전 8시라서 이를 악물고 일찍 일어나야 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과거의 나는. 사실 검사할 때가 다 되니까 출장 RAT 검사 자체도 돈이 좀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로비로 나가서 검사를 받았다. 한국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검사를 진행, 결과는 두 시간 안에 이메일로 보내준다고 한다. 불편하면서도 편리한 세상이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짐을 마저 쌌다. 항공편 출발시간이 오후 10시 40분이지만 일단 호텔 체크아웃은 정오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체크아웃 전에 한번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씻고 나가려면 미리미리 나갈 준비를 다 해놓는 것이 좋다. 짐을 다 싸고는 이제 자그마치 네 번째 방문인 (한번은 실패) 마이 반미로 가서 치킨이 들어간 반미를 먹었다. 맛있었지만 역시 첫날 먹은 소고기 반미가 제일 맛있었다고 생각한다. 반미와 오렌지 주스로 배를 채운 후 목적지 없이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사진을 좀 찍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조금 지겹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마지막 날에 하필 날씨도 좋아서 사진도 잘 나오는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만.
바깥에서 땀을 쫙 빼고 돌아와서 마지막 샤워를 한 후 체크아웃을 진행했다. 이제 한국에 도착하기 전까진 더 이상 샤워할 곳이 없으니 땀을 많이 흘리지 않게 조절해가면서 다녀야 한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나와선 어제 야심 차게 예약해둔 'Pizza 4P's'로 향했다. CJ빌딩 (한국의 그 CJ 맞다) 옆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면 나오는 레스토랑의 작은 입구를 들어가자, 예상보다 훨씬 큰 내부 공간이 나타났다. 여러 층 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는데 도로변이 아니라 보이지가 않은 듯 싶다. 인테리어도 꽤 스페인 같은 유럽풍으로 꾸며져 있었다. 난간이 멋스러운 원형 계단을 통해 2층의 작은 테이블로 안내 받았다. 가격대가 조금 있기도 하고, 분위기도 좋아서 나처럼 여행자가 혼자오기 보다는 커플 또는 친구들 여럿끼리 와서 자리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혼자 왔기 때문에 피자 여러 개를 시키기는 힘들었는데, 다행히 Half & Half 메뉴가 있어 부라따 햄 피자와 매운 토마토 소스 해산물 피자를 한 번에 주문했다. 인테리어를 감상하면서 피자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는데, 맛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맛의 농도 자체가 강한 피자가 아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진 듯했다.
식사를 하고 나와서는 특별히 어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적당히 걸으며 사진을 찍다가 근처의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았다. 다시 여행 기록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두세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슬슬 엉덩이가 아파질 때쯤 다시 밖으로 나와서 이번엔 큰 동선으로 도시를 걸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마지막 산책에서 사진을 제일 많이 찍은 것 같다. 여유로운 스케줄이 주는 느긋함도 좋지만, 데드라인에 익숙한 한국인 프리랜서로서 조급함이 주는 에너지를 쓰는데 익숙한 사람인 걸 증명하는 것 같아 조금 서글펐다. 거대한 가로수를 제거하기 위해 나무 주변에 둘러앉아 작업하는 사람들, 베트남 전통 모자를 쓰고 폐지를 줍는 할머니, 마블 영화의 어벤져스 타워가 생각나는 사이공 스카이덱, 강변의 작은 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산책을 마무리했다.
이 이후로는 여행의 마지막이 항상 그렇듯 아쉬움 반 지겨움 반으로 시간을 보냈다. 저녁은 호텔 근처의 스키야 (일본 규동 체인)에서 해결하고, 짐을 챙겨 그랩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출발 3시간 전이었으니 다소 이른 시간이기는 했지만 이번 여행의 목표 중 하나인 '기내에서 영상 편집하기'를 위한 사전작업을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진행했다. 비엣젯 항공의 느린 수속을 뚫고 면세 구역으로 들어와서 남은 베트남 동으로 자질구레한 것들을 샀다. 비엣젯 항공편은 역시나 50분 정도 연착되었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그러려니~'를 마음속으로 외쳤다. 덕분에 약간 빠듯할 수도 있었던 영상 편집 준비를 여유롭게 마칠 수 있었다. 아이패드로 영상들을 다 옮기고, 필요한 지명과 음식명 등을 미리 검색해서 메모장에 옮겨놓았다.
게이트 앞에 앉아있으니 한국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럴 때 정말 여행이 끝났다는 것을 실감한다. 괜히 그 느낌을 유예하고 싶어 에어팟을 귀에 꽂고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켠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직 조금 더 이방인의 기분을 유지하고 싶다. 다음 여행은 언제가 될까? 뉴스를 보니 한국은 다시 코로나 확진자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다음에 기록하는 여행기가 2023년 글이 되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면서 비행기에 올랐다. 내가 기꺼이 선택한 외로움의 세계, 내가 당장 서 있는 이곳에만 충실하면 될 뿐인 세계로 노력과 돈을 들여 떠났다 돌아오는 이 비효율적인 일을 힘 닫는 데까지 꾸준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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