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나갈 때 수속에 얼마나 걸렸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서 여유롭게 집에서 출발해 항공편 두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인천공항의 풍경이 낯설다. 점점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곤 있지만 아직 코로나 이전보단 훨씬 한산한 모습이다. 여유롭게 들어가서 시간을 때워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비엣젯 항공의 체크인 속도가 느려서 대기열에서 한참 기다렸다. 여유롭게 도착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위탁 수하물을 추가해야 했기에 4만원 정도를 추가 지불했다. 왕복을 생각하면 8만원, 기존 항공편 가격이 39만원임을 감안하면 역시 비싸긴 하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돈 생각은 최대한 안 하기로 했다. 다녀오는 것이 중요하다. 어머니의 부탁으로 면세점에서 가격을 살펴봤는데 달러 환율이 최악인 상황이라 전혀 메리트가 없는 상황, 친구들 면세 담배 구매도 시도했다 포기하고 (찾는 품목이 없었다) 적당히 기다리다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엣젯 항공의 좌석이 좁아서 매우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많지만, 일본 갈 때 피치 항공도 타고 국내의 저가 항공사도 자주 탑승하는 나에게는 특별히 더 불편한 점은 없었다. 오히려 5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간헐적으로 풍겨오는 라면 냄새가 제일 불편했다. 왜 중장년층들은 기내에서 라면을 열심히 찾아 먹을까? 내가 냄새 맡기 싫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냄새를 풍기기 싫어서 식사 시간이 있는 장시간 비행이 아니라면 라면은 먹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뭐 내가 불편하다고 불법도 아니고 하니 그냥 적당히 참으면서 아이패드와 스위치로 시간을 때웠다.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넷플릭스 컨텐츠 몇개를 아이패드에 담아왔는데 그 중 '6 언더그라운드'를 보았다. 정말 재미가 없었지만... 일단 따로 할 수 있는게 없는 상태고 하니 끝까지 보긴 했다. 데드풀의 옷을 입지 않은 라이언 레이놀즈의 유머는 견디기가 힘들었고 마이클 베이의 폭파술은 화려하긴 했으나 의미 없이 공허하게 흩어졌다.
호치민 떤선넛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현지 시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공항 수하물이 정말 느리게 나와서 한참을 기다렸다. 항공기 제일 뒷자리였던 데다가 입국 수속도 한참을 걸렸는데, 그러고도 30분은 수하물 라인에 서서 기다리다 캐리어를 받아 공항의 택시 타는 쪽으로 나오니 시간이 4시가 넘어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지는 않았는데, 느린 일 처리에 투덜대는 한국인 아저씨들이 허공에 퍼뜨리는 부정적 에너지 때문에 좀 짜증이 났다. 한국에서 생각한 바로는 공항에서 잽싸게 나와서 간단한 점심을 먹으려고 했었는데 그 계획이 애매해졌다. 여행지에서 한 끼 한 끼가 소중한데... 제대로 시간에 맞추어 먹지 않으면 끼니를 거르게 되거나 억지로 먹어 불쾌하게 배부른 상태가 되어버리니 조심해야 한다. 이미 몇 년 전쯤 호치민에 와보긴했지만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던 관계로 다시 복습한 '공항에서 택시 타는 법'을 되뇌며 비나선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어느 나라에 가든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이고 숙소로 가는 길이 제일 긴장된다. 제일 정신이 없는 순간이기도 하고. 택시 안에서 그랩 앱에 마스터카드 등록을 하려고 애써봤지만 계속 해외인증 오류가 생겨서 결국 실패했다. 좀 편하게 여행해보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다. 베트남은 '또 현금을 세면서 여행하는 맛이지'라며 느긋한 생각을 했다. 여행은 느긋한 생각이 중요하다. '그러려니'와 '오히려 좋아'의 마음으로.
이번 일주일간 여행의 나의 숙소는 '로즈랜드 스위트 & 스파'라는 4성 호텔이다. (근데 구글에는 3성으로 나와 있음). 1군의 중심부에서 적당한 거리에 위치해 있고 가격도 저렴한 곳이다. 여행지에서 숙소에 돈을 크게 투자하는 편이 아니라서 이렇게 적당한 가격대에 갖출 것만 갖춘 곳이면 충분하다. 창문이 없는 방도 있었으나 낮과 밤의 감각을 쉽게 포기하긴 힘든 부분이라 창문이 있는 더블룸으로 골랐다. 기대 안 했는데 욕조도 갖추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이 부근이 일본인들이 많은 구역이라 좁은 욕실에도 욕조를 구비해놓은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세팅되어있는 TV 채널도 'NHK World'인 점이 재밌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방음은 좋지 않은 단점이 있었음)
짐을 대충 풀고, 숙소 밖으로 나와서 근처에 있다는 반미 레스토랑 'My Banh Mi'로 갔다. 당연히 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미묘하게 구글맵에 표시된 위치와 다른 위치에 있어서 한참을 찾았다. 원래 목표로는 테이크아웃한 반미를 들고 도시를 둘러보면서 먹으려고 했는데, 뜨거운 날씨에 길을 이리저리 돌다 보니 이미 땀이 잔뜩 나서 매장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시그니쳐 반미 메뉴의 'Bò Mỹ - Seared & Roasted USDA Hanger Steak'를 시켰다. 소스는 점원의 추천을 받아 크리미 바질. 빵이 바삭해서 부스러기를 흘리지 않고 먹기가 힘들었지만, 한국에서 먹을 수 없는 고수를 포함한 풍부한 향이 가능한 놀라운 맛이었다. 오이와 함께 정확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채소들과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매장에는 현지인들도 있었으나 한국, 일본, 유럽 등 다양한 손님들이 오는 듯했다. 반미 하나에 13만동 선이니 길거리에서 파는 반미에 비하면 훨씬 비싼 가격이긴 하다. 하지만 여행자로서는 시원한 실내에서 영어가 가능한 친절한 직원 또한 있으니 충분히 지불 가능한 가격이다. 이곳은 다른 시그니쳐 메뉴들도 궁금해서 시간이 나면 다시 와보자고 생각하고 식당을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환전소다. 공항 환전소 환율이 좋지 않다는 말에 공항에서는 100달러 정도만 환전했고, 나머지 400달러는 시내 환전소에서 환전하기 위해 남겨놓은 상태였다. 숙소와 'My Banh Mi', 환전소가 각각 10~15분 정도 거리로 충분히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어 따로 차를 부르진 않고 설렁설렁 걸어갔다. 현재가 동남아시아의 전반적인 우기로 알고 있고, 날씨 앱으로 본 일기예보도 거의 항상 비가 올 확률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걱정했는데, 현지 날씨는 다행히 아주 쾌청했다. 역시 덥고 습해서 땀은 삐질삐질 났지만, 거의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나에게 비가 많이 오는 날씨는 굉장히 신경이 쓰인다. (카메라가 방진방적을 지원하지만 신경은 계속 쓰인다.) 직선거리로 이동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여행지에서 으레 그렇듯 여기저기 골목길을 통해서 돌아다니다 보니 원래 출발 전 검색했던 'Hung Long Money Exchange'는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그래서 영업시간이 두 시간이나 긴 근처의 'Quầy Thu đổi Ngoại tệ Eximbank 59'에서 환전을 했다. 우리나라 환전소처럼 실시간으로 오늘의 환율이 화면으로 표기되는 시스템은 아니었고 적당히 알려주는대로 돈을 받았는데, 공항에서 환전을 한 것은 환전앱에서 본 금액에서 조금 적은 금액을 받았고, 시내 환전소에서는 환전앱의 금액보다 돈을 조금 더 받았다. 아무리 환율을 잘 쳐줘도 앱 계산보다 돈을 더 받는게 가능한가? 싶지만 그랬다.
역시 잠시 걸었다고 또 몸이 땀으로 다 젖었다. 그래도 땀이 난 후에 일상생활을 수행해야 하는 한국과 달리 나는 여기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필요하면 멈춰 쉴 수 있는 여행객이니 덜 불쾌하다. 역시나 땀이 나도 비를 맞아도 '그러려니~' 해야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즐거울 수 있다. 그래도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샤워하러 바로 숙소로 들어가기는 싫어서, 근처의 적당한 마사지 샵에서 마사지를 받으면서 땀을 식히기로 했다. 5시간의 비행으로 허리가 조금 아프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냥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다. 잠깐 검색을 통해서 환전소에서 가까운 'Saigon Heritage Spa & Massage'로 갔다. 예약 없이 워크인으로 들어간 거여서 60분 코스만 진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행히 나도 오래 받을 생각은 없어 흔쾌히 그 코스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내가 아는 태국 마사지 코스와는 다르게 60분 코스 안에 얼굴 오이 팩과 핫 스톤 마사지가 포함이 되어있었다. 한시간을 조용히 마사지를 받고 나오니 어느새 해가 점점 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반미가 다 소화된 느낌은 아니었지만, 저녁 식사를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에 걸어갈 만한 거리의 쌀국수 집을 검색하고 출발했다.
목적지 식당을 가기 위해 응웬 후에 워킹 스트리트의 시끌벅적한 인파를 지나쳤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호치민 시청 정면으로부터 이어지는 워킹 스트리트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무슨 행사를 하는지 중앙에 있는 무대에서도 공연을 시작하고 있었다. 확실히 아직까지 여행객들이 많지는 않은지 대부분은 현지 사람들인 것처럼 보였다. 주인을 따라 나온 강아지들과, 스케이트보드를 탄 쿨키드들을 지켜보는 게 재밌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이 많은 곳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 시끄러움에 질릴 때쯤 식당으로 들어갔다.
도착한 곳은 'PHỞ HÀ'라는 쌀국수 식당. 외국인보다는 현지 손님 위주로 있는 것 같았다. 리뷰를 보았을 때는 닭고기가 들어간 쌀국수로 유명한 것 같았지만, 베트남 첫 끼는 왠지 소고기가 들어간 쌀국수를 먹고 싶어서 Phở Bò를 주문했다. 쌀국수는 빠르게 나왔고, 국물을 먼저 마셔보니 생각보다 간이 강했다. 하지만 불쾌하게 짤 정도는 아닌 딱 허용가능한 범위 정도. 고수는 이미 들어가 있었고, 라임과 함께 바구니에 타이 바질(Rau húng quế)이 담겨 나왔다. 사전에 찾아본 바로는 베트남에서는 쌀국수에 절인 마늘을 넣어 먹기도 한다고 했는데 이 식당에선 나오지 않았다. 북부 남부 스타일이 다른 걸 수도. 타이 바질을 잔뜩 넣어서 먹으니 역시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농도의 향이 입안에 가득하다. 4년 전 베트남에 왔을 때는 고수를 먹는데도 소극적이었는데 이제는 꽤 좋아하게 되었다. 음식을 주문할 때 맥주도 같이 시켰는데, 다 먹을때까지 맥주는 나오지 않았다. 계산할 때 쯤 점원에게 영수증을 보여주고 테이블을 가리키니 실수를 알아차린 듯 당황했지만 뭐 어때, 여행와서 짜증을 낼 필요도 없고. 그냥 쌀국수 가격만 계산하고 식당을 나와 인파를 뚫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제로 콜라 한 병과 함께 업무 메일을 몇 통 썼다. 프리랜서로서 여행을 지속하려면 여행지에서 어느 정도 업무를 해나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맥북을 들고 오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 밀린 일을 처리하고 앞으로 변하게 숙소를 쓸 수 있게 짐 정리도 좀 해놓은 다음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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