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가장 싫어하는 어느 날. 내가 느끼고 있는 고통이 절대로 내가 잘못해서는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나를 싫어하는 내가 '그건 네가 부족한 탓이지'라고 소리높여 외치는 그런 날. 세상의 수많은 따뜻한 마음들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줘도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문제가 있는 게 맞지'라는 연기가 마음속 깊숙한 곳 어디선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날에. 부정적인 마음을 계속 가지게 하는 SNS 계정을 비활성화하고 부정적인 질투를 하게 하는 사람들의 계정을 남몰래 차단하며 그 행동 자체가 다시 끔찍하게 느껴지는 어떤 날에. 타인의 즐거움이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런 날에.
나 자신을 의심하고 다그치는 것이 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나를 다그쳐 얻은 능력으로 지금까지 벌어먹고 살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언제 그만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더 고민해서 남들보다 잘해야지, 좀 더 아끼고 더 벌어서 집안의 지원을 받아 턱턱 잘도 집을 구하고 유학을 가고 스튜디오를 짓는 사람들을 넘어서야지. 나는 없는 것을 가진 사람들 옆에서 보고 배우고 훔쳐야지. 남들이 싫어할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말아야지. 하루빨리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마도 이미 몇 년 전 부터 그만두어야 한다고 어렴풋이 생각은 했던 것 같다. 그래도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버텼다. '버티니까 버텨지네?' 하지만 버틴 이후에 밀려오는 공허함을 어떤 것으로 채워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모를 예정이다. 목표를 이루면 보통은 즐거워하던데 나는 왜 더 슬퍼질까, 대체 앞으로 얼마나 더 버텨야 '그럴듯한 사람'이 되는 것인지? 그럼 버티지 못하면 나는 '별 볼 일 없는 가치 없는 사람'으로 남아버리는 것인지. 절대 그렇지는 않아. 머릿속으로 되뇐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하지만 수년간 내 스스로를 다그치던 버릇이 만든 자기혐오는 이미 내가 선 자리에서 멈추고 쉬겠다고 앉아있는 내 등 뒤에서 계속 속삭인다. 넌 그냥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징징대고 있을 뿐이라고. 넌 모든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에게 질투나 하면서 주저앉아 있을 뿐일 거라고. 시간이 지날수록 네 몸은 점점 늙고 병들어갈 거고 예민한 너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은 결국 모두 사라질 거라고. '세상에 잘했어, 괜찮니, 힘들었지 말해줄 사람'을 찾다 결국 혼자 쓰러질 거라고. 겉보기에 멀쩡한 연기를 열심히 하다가 쓰러질 땐 아무도 너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꼭 토해내야 하는 말을 해내지 못하고 참고 참다가 탈이 나서 혼자 고통스러울 거라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잘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고 번번이 실망만 안길 거라고. 가끔씩 어렴풋이 느끼는 행복을 좇다가 결국 얻는 것은 삶의 대부분을 채울 아쉬움과 슬픔뿐이라고.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존중하고 이해해주는 사람도 세상 어딘가에 있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지긋지긋한 자기혐오의 문제점은 아는 것만으로는 전혀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어오르는 의심을 다른 생각으로 희석하고, 성취감을 주는 일들로 덧씌우고, 힘을 주는 사람들과의 대화로 흔들어놓아야 한다. 굳이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마 그래서 쓰는 거겠지, 어떻게든 나를 덜 싫어하게 만들고 싶어서. 글을 마무리할 때 '그래도 나는 할 수 있다'로 끝맺음하고 싶지만, 오늘처럼 내가 나를 가장 싫어하는 어떤 날에는 그런 짓은 자기기만으로 느껴진다. 교훈도, 다짐도 없이 그냥 끝내 보자. 자기혐오가 더 심해지는 것을 막는 데에도 힘에 부치는 날들이다. 앞으로도 최대한 버텨내야 한다. 다만 언젠가 어느 순간 평온한 마음이 찾아오는 날이 있기를. 그것이 헛된 희망이 아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