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자주 같이 콘솔게임 멀티플레이를 즐기는 친구들 중 한 명의 제안으로 새로운 게임을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총알 대신 잉크를 쏘며 플레이하는 게임 <스플래툰 3>였다. 정신없는 빠른 경기 템포, 언제든 일발역전이 가능한 시스템, 승패가 킬 수가 아니라 팀 색깔로 칠해진 땅의 면적으로 결정되는 시스템 등을 처음 접했을 당시엔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지금껏 경험했던 타 게임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캐주얼한 플레이 감각에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에 빠져들었다. 단 3분 안에 게임이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시스템의 영역 배틀은 압도적으로 밀려서 패배하거나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부정적 경험의 양을 줄이고 '그럼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 판 더?'의 마음으로 게임을 계속할 수 있는 의욕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줬다.
2022년 10월, 한창 스플래툰3를 즐기고 있을 시점에 다른 게임 하나가 발매되었다. 근 6년 동안 간간히 즐겨왔던 게임의 후속작 <오버워치 2>였다. 전작을 정말 즐겁게 오랜 기간 했었지만 큰 변화없이 게임 경험이 고착화되었던 서비스 후반 몇 년간의 지루함에 지쳐 그만두고 있던 게임이었는데, 후속작이 발매된 기념으로 전작을 같이 플레이하던 친구들과 다시 함께 모여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6인 팀 전투에서 5인 팀 전투로, 몇 명의 새로운 영웅과 새로운 게임 모드라는 후속작치고는 다소 소극적인 변화만 있었지만, 어쨌든 다시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 전작을 플레이할 때 즐거웠던 경험이 거의 그대로 느껴졌다. 이 시리즈를 플레이할 때 내가 제일 즐거운 순간은 '협동'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각자 고른 캐릭터의 각자 다른 역할들이 한타 싸움*에서 최적의 타이밍에 각자의 역할을 다해줄 때 느껴지는 쾌감은 다른 FPS에서는 잘 느낄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해 오버워치를 즐겨 플레이해왔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기에 패배하더라도 팀플레이로서 잘 맞물려 들어간 경기는 대체로 즐거웠다.
2022년 11월, 두 게임 모두 플레이하는 빈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원체 멀티플레이어 게임을 오랫동안 즐기지 않는 편이기에 시작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게임을 그만두는 것 자체는 내겐 크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게임을 접속하지 않게 되면서 두 게임에 느꼈던 감정이 각각 사뭇 달랐다는 것이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 <스플래툰 3>의 경우에는 '내가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전부 즐겼다.'라는 문장이 마지막 인상이다. 반면에 <오버워치 2>는 '게임을 하면 즐거움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가 마지막 인상이었다. 정반대인 이 감정의 차이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되었다.
<스플래툰 3>를 처음 시작했을 때, 친구와 팀플레이를 하기에는 너무 빠른 경기 템포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항상 음성채팅을 켠 상태로 게임을 했지만 들리는 사운드는 '전략을 어떻게 하자'거나 '이 타이밍에 뭘 해야 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대부분 의미 불명의 탄식이거나 비명, 그리고 다급하게 들리는 '뒤에! 뒤에! 뒤에!' 정도의 짧은 대화였다. 물론 이 경험은 다분히 우리 팀의 실력에 따른 개인적 경험이겠지만... 객관적인 부분을 살펴봐도 게임 시스템 자체가 의아할 정도로 타 플레이어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소극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채팅을 지원하지 않고 (스위치 기기상 어쩔 수 없지만), 보이스챗을 지원하기는 하지만 게임 내부 지원이 아니라 스마트폰 앱을 통해 연결해야 하고, 채팅 시스템상 자신과 친구가 아닌 사람과는 소통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점 등이 그렇다. 게임의 배경이 되는 '카오폴리스 타운'의 공간도 굉장히 다채롭게 꾸며져 있지만 이 공간에서 친구 캐릭터와 실시간으로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NPC의 형태로 등장하는 타 플레이어의 흔적을 확인할 수만 있을 뿐.
이런 의사소통의 불편함을 처음에는 단순히 '닌텐도가 닌텐도 했다.'의 느낌으로 받아들였었다. 이런 불편한 느낌을 <동물의 숲>을 플레이 했을때 비슷하게 느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섬으로 입장할 때 느릿느릿한 1:1 접속방식이 마치 '2000년대의 <포켓몬스터> 통신 교환 시스템'을 떠올리게 했을 정도다. 수없이 많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이 가득한 2022년에 이런 시스템이라니, 그야말로 안 좋은 의미로서의 장인정신 같았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런 불편하고 답답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이 게임의 주요 콘텐츠인 '영역 배틀'의 시스템과 결합되어 앞서 언급한 <오버워치 2>와 전혀 다른 게임 경험을 느끼게 해주는 기반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을 노리고 불편한 시스템을 만들진 않았을 것 같지만)
'영역 배틀'은 <스플래툰 3>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콘텐츠다. 4대4의 대결로, 적 플레이어 또는 전장의 바닥에 잉크를 뿌려 최종적으로는 바닥에 어느 쪽 팀의 잉크의 색이 많이 칠해졌는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슈팅 장르이면서 주요 무기가 총이라는 설정은 쏘아내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기본적으로 게이머들에게 적을 많이 죽이는 것에 집착하게 만드는 설정일 수밖에 없을 텐데, 이 게임은 총탄 대신 잉크를 사용해 킬/데스가 아닌 영역 확보를 위한 전투를 하게 만들어냈다. 적을 죽이는 것은 전장에서 플레이어 한 명을 몇초간 제거하기 때문에 영역 확보에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그것에 집착해 이미 자신의 팀이 확보한 구역에서 적을 향해 총만 쏘아대다가는 나머지 구역에 적의 잉크가 도배되어버려 결과적으론 게임에서 지게 만드는 플레이가 된다. (물론 소름 끼치게 잘 쏴버리면 그건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다.) 사용할 수 있는 무기 또한 적을 공격하는 데 특화된 무기가 있는가 하면 착실하게 넓은 영역을 칠해나가는 무기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적을 조준하는 데 자신이 없는 플레이어들도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준다. 나는 이 게임에서 그것이 꽤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짜 맞춰진 팀플레이를 할 여지는 (비교적) 없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서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 설령 다소 게임이 꼬여서 경기에 지더라도, 3분이라는 짧은 경기 시간 탓에 큰 아쉬움 없이 다음 게임으로 돌입하면 된다는 점. 거기에 커뮤니케이션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르는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의미 없는 옥신각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까지 더해지면서, 이 게임은 누구에게라도 추천할 수 있고 서로 웃으면서 즐겁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멀티플레이어 게임으로선 흔치 않은 영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스플래툰 3>을 플레이할 때는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 시점에 이 문단에서는 '그렇지만 <오버워치2>는...'으로 시작하는 문단이 등장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시작하기 전에 슬쩍 고백하고 넘어가자면, 나는 이 시리즈가 여전히 완성도가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FPS 장르에서 이렇게 각 캐릭터마다 개성적인 플레이 감각을 유지하면서 규모를 계속 늘려나가는 게임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무위키나 게임 커뮤니티라면 금방 다른 게임의 이름이 튀어나오겠지만... 단순히 캐릭터 숫자가 더 많다거나 업데이트 주기가 빠르다든가 하는 수치상의 문제가 아니라 '이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플레이 감각을 상위호환 하는 다른 게임이 있나?'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개인적으론 아직까진 그런 게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제 원래 등장해야 할 문장을 뒤늦게나마 등장시켜보자. 그렇지만 <오버워치 2>는 왜 '게임을 하면 즐거움보다 스트레스를 더 받는다.'는 인상을 내게 줬을까? 아마도 내가 플레이해보지 못한 수많은 멀티플레이어 게임에도 동시에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은 이유다.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왔던 것이다. 결국 이 게임은 팀플레이로 설계되어있는 게임이고 그렇기에 5인 모두를 내 지인으로 채우지 않았을 경우 결국 타인과 역할 협력을 해야 게임이 잘 굴러가는 게임이다. 그러니까 매번 대학 교양수업 시간에 랜덤으로 배치된 사람과 팀플레이 과제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물론, 게임은 그저 게임일 뿐이다. 실제 인생처럼 경기에서 진다고 내 현실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아쉬움이 들더라도 다음 게임에서 잘하면 되고, 지금 내 실력이 별로라고 해도 앞으로 계속 발전해나가면 된다.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게임 한 판에 모든 것이 달린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다는 점이다...
혼자 게임 판세와 아무 상관 없는 위치에서 승패와 별 관련없는 킬수만 올리고 있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뭐하냐?'며 비아냥댄다든지, 수치상으로 해낸 일이 별로 없는 사람이 갑자기 우리 팀 탓을 하고 나가버린다든지, 게임하고는 별 상관없이 그냥 타인을 모욕하는 재미로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든지,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사람이라든지, 자기가 원하는 플레이를 안 해줬다고 게임을 던진다*던지... 열거하자면 끝도 없는 인간군상이 이 게임 속에 존재하고 있다. 아니 아마도 소통이 가능한 멀티플레이어 게임 모두에 그들은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종종 맞닥뜨리고 있다보니 <스플래툰 3>의 의사소통의 답답함에서 오는 아이러니한 쾌적함을 떠올리며 '게임이 다 이렇게 돼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알고 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게임이 다 이렇게 될'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을. 게임 플레이 매너의 문제를 고치기 위해서 게임 문화를 바꾸는 쪽으로의 접근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내 의사소통을 막는다는 해법을 취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박힌 폭력적 게임 문화가 단기간에 변할 리 없다고도 동시에 생각하기에 떠들어본 푸념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멀티플레이어 게임, 특히 협동이 기반이 된 게임은 싱글 플레이어 게임과는 전혀 다른 즐거움을 준다. 일종의 가상 팀 스포츠를 즐기는 것에 가까운 즐거움이다. 게임을 지금까지 열심히 즐겨왔고,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꾸준히 즐길 게이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에게도 쉽게 추천하고 같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한다. 그렇기에 더 많은 <스플래툰 3>가 필요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게이머들 내부에서도 비매너 플레이어가 더 적어져야만 한다. 아무리 잘 만든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라 할지라도 '고인물*'만 남게 되면 그 게임은 점점 망해간다. 그리고 나는 '고인물' 판을 만드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수틀리면 타인을 공격해대는 게임 문화라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나는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에게 <스플래툰 3>를 추천하고 즐겁게 같이 플레이할 자신이 있지만 <오버워치 2>를 섣불리 추천하기엔 자신이 없다. 맘 편히 같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많아지기를! 총탄 대신 잉크를!
***
한타 싸움 : 게임에서 승부를 좌우하는 중요하고 큰 한 번의 싸움
게임을 던진다 : 고의로 게임 승리를 포기하고 제대로 플레이하지 않는 것
고인물 : 게임을 오래 플레이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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