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두 글을 쓰면서 왠지 상담사에 대한 불평만을 늘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나쁜 상담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비교해볼 다른 상담사를 만난 적이 없으니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나의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 내 이야기를 성실히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상담사는 그의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 상담사에 관한 묘한 불신과 적개심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나의 꼬인 성품 탓일 가능성이 높다. 상담사분이 나보다 훨씬 윗세대의 사람이었다는 세대적 한계도 감안할 수밖에 없고. 언젠가 친구에게 상담 경험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교양 심리 수업 몇 번 들은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다'고 오만한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이제와서 생각하면 그렇다고 내담자가 알 수 없는 현란한 단어들로 설명할 수는 없지 않느냐 싶은 것이다. 대체 어쩌라는 건지 내 자신에게 묻고 싶지만, 물어도 대답할 수 없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언이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미래의 삶의 예시를 '결혼할 사람을 찾아 아이를 낳고 기르는 나'로 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우리 세대의 숙명 아닐까? 구차한 변명을 덧붙여본다.
각설하고 다시 상담 경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이후 4회기의 상담은 대개 같은 패턴으로 진행되었다. 일주일에서 열흘 전후의 텀을 두고 만나서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를 대강 이야기한 후, 감정적으로 좋았는지 나빴는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좋았다면 그런 이유와 나빴다면 그런 이유를 이야기하고 관련된 경험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느낀 좋은 점이 있다면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는 과거의 기분들을 기억해보려 노력하게 된다는 점이다. 성장기에는 특정 상황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인간관계가 특정 상황에 처하면 공통적으로 어떤 기분이 드는지,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스스로 기억력이 매우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과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강하게 남는 어떤 흔적 같은 것들은 계속 존재해왔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이런저런 대화들을 30분에서 35분 진행하고 나면 대망의 머쓱한 모래놀이 시간이 찾아온다.
본격적인 4회기의 상담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기존에 상담사를 만났던 방과는 다른 방에서 상담을 진행했다. 처음 그 방에 들어갈때의 당황스러움이 아직도 기억난다. 흰색 벽에 몇가지 책이 꽂혀있던 깔끔한 기존 상담실과는 다르게, 마주보고 있는 양쪽 벽면에 각종 디오라마 모형들과 인형들이 진열되어 있는 요란스러운 방이었다. 작은 상담테이블이 하나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래에 바퀴가 달린 테이블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모래를 담은 테이블이었다. '모래놀이 심리치료'를 위한 전용 방인 것이다. 쭈뼛대면서 주변을 둘러보며 상담사에게 다시 한번 불안함을 전했다. '제가 이것을 하는게 효과가 있는지...' 상담사는 다시 한번 웃으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전문가의 말을 애써 믿어보려고 했지만... 솔직히 상담을 계속하는 동안 100% 믿게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상담 세션의 마지막 10분에서 15분 정도를 남기고 시작하는 모래놀이 치료는 간단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전용 테이블에 담겨진 모래를 이용해서 떠오르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뿐이다. 그 모래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만들기만 한다면 그 밖에 다른 규칙은 따로 없는 듯 했다. 모래가 들어있는 전용 테이블은 십여 센티미터의 깊이를 가진 80 센티미터 정도 너비의 직사각형 구조였다. 모래가 담긴 공간의 내부는 파랗게 칠해져 있었고, 상담전에 항상 정리를 해두시는지 모래가 균일한 높이로 얕게 펼쳐져 있는 상태로 놀이를 시작하게된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해해서, 상담사는 일단 모래를 만져보면서 시작을 하라고 조언했다. 실로 오랜만에 만지는 고운 모래였다. 손에 만져지는 모래와, 모래가 담겨있는 파란 테이블 공간을 가만히 쳐다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파란색은 물, 모래는 땅으로 느껴졌다. 그 감각에서 출발해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해변풍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모래로 완만한 곡선의 해변 라인을 만들어 준 후 벽에 진열되어있는 모형들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것들을 찾아다녔다. 모형들은 각기 다른 브랜드와 장난감들 사이에서 사 모은 것이었는지 굉장히 제각각 이었고 미감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가 만든 해변에 놓고 싶은 모형들이 많지는 않았다. 특히 사람 모형들은 정말 쓰고싶지 않아서 작은 동물들과 야자나무들로 한적해 보이는 해변을 만들고, 그나마 봐줄만한 구조물인 등대를 뒤쪽에 세웠다. 첫 모래놀이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게 즐기면서 진행했던 것 같다. 모래놀이 행위 자체에는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었지만 우스워도 해보는 것 경험 자체가 재밌잖아? 하는 마음이었다.
모래놀이를 완성하고 나면, 상담사는 내가 만들고 배치하는 행동을 보면서 이런저런 기록을 하고 있다가 그 풍경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시간을 짧게 가졌다. 이 풍경을 왜 만드셨어요? 왜 이런 물건을 사용하셨어요? 같은 질문도 있었고, 전통적으로 내가 사용한 사물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관해 심리학적 의미를 전달해주기도 했다. 대부분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많은 동물들을 사용한 것이 심리학적으로는 '본능'을 상징한다는 상담사의 말을 들었다면 내 마음속으로는 '사람 피규어가 마땅한 게 없고 사이즈가 커서 동물을 썼을 뿐인데요.'하는 소심한 반항을 하는 식이다. 풍경 바깥쪽에 세워진 등대를 보며 '이것은 전통적으로 남성성을 상징합니다.'하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해석할 줄 알았어.' 하기도 했다. 굉장히 다루기 힘든 성격의 내담자였을 테다. 하지만 당연히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 대화를 이어갔다. 이렇게 표현한다고 해서 모래놀이가 고통스러운 경험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 상담사가 하는 말을 많이 흘려들었지만 흘러가는 수많은 말들 중 몇 개는 마음에 담아두고 싶어지는 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말들은 대개 내가 만들어낸 것들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에서 나오는 말들이 아니라, '왜 이런 풍경이 좋아 보였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나오는 말들이었다. 내가 왜 해변을 떠올렸을까? 동물 사이의 간격을 띄워놓는 것이 왜 아름답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다가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들. 그런 말들 때문에 수도 없이 떠오르는 상담의 효과에 대한 의심을 누르고 약속한 4회기의 상담을 모두 진행하고 끝마치지 않았나 싶다.
제일 기억하고 싶었던 말을 꼽자면 다섯 번째의 상담(세 번째 모래놀이)에서 모래놀이를 끝내고 이야기를 나누며 들었던 말이다. 그때 만들었던 풍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원래 떠올랐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 실패해서 만들어진 애매한 곡선의 파란 영역을 이용해 완성한 것인데, 이 파란색을 둘러싼 모래들이 마치 위아래 구역을 연결해주는 통로 같아 도로와 자동차를 놓고 완성했던 풍경이다. 이를 보고 이런저런 다른 이야기들을 하다가 상담사가 꺼낸 이야기 중 하나가 'OO 씨의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에게 이어진 것처럼 보이네요.'라는 말이다. 동물이 들어찬 숲이 무의식을 의미하고 인간과 문명의 상징인 집들이 의식을 의미한다는 뻔한 해석을 내가 갑작스레 만든 풍경에 대입하는 것은 지금도 동의하지는 않지만,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전혀 다른 방향을 보며 달려갈 때 사람에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진짜 이어지고 있다고 믿어보고 싶게 되는 말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감정들이 대체 어디서 피어나기 시작했는지 애써 찾아내고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조금씩 상태가 좋아졌던 기억도 다시 생각났다.
나는 내 무의식적 감정을 의식적으로 살펴보고 돌봐야 한다. 어떤 의미로는 나를 100%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내 인생에 나 하나밖에 없으니까. 심드렁한 모래놀이의 끝에 건져 올린 소중한 말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모래놀이 상담이 가치가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 상담사에 관해 투덜대면서도 나쁜 상담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내 마음은 조금씩 좋아졌다. '상담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라며 후기를 남길 정도의 인상을 남기지는 못한 것은 아쉬울지라도... 내 감정회복에 제일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나를 살펴봐 준 소중한 친구들, 마음을 위로해준 좋은 창작물들,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 새로 시작한 운동과 취미 생활들의 도움이 분명하지만, 상담도 그 에너지들을 한 번씩 정리해보고 곱씹게 해주는 역할로 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현재는 첫 상담을 결심하던 시기 -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심호흡을 하고 일을 도저히 못 하겠다고 생각했던 시기보다는 한 발짝 강한 사람으로 나아간 듯하다. 매번 아슬아슬한 위기를 버텨내고 있는 기분이 들고, 인생의 한 시기를 잘 마무리하고 다음 시기로 나아갔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아득히 머나먼 길이 남아있는 느낌이지만. 정말로, 나쁜 상담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쁜 모래놀이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