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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돌아보기

서곡 2023. 12. 30. 22:34

 

올해 처음 감기에 걸린 날이 올해 마지막 주라니, 어제 갑자기 안 좋아진 컨디션으로 처방받은 감기약을 몸에 때려 넣고 오늘 하루 종일 침대에서 미적대다가 아홉 시가 다 되어서야 정신이 맑아졌다. 일도 약속도 없는 날 아파서 다행이지. 좋은 발병 타이밍 덕분에 마음의 짐 하나 없이 푹 쉴 수 있었다. '내일 뭘 해야 하는데' 생각 없이 누워있을 수 있는 날, 참 귀하다. 저녁밥과 약을 대충 챙겨 먹고 마저 누워있을까 하다가 올해 글 하나 정도는 써놓아야 홀가분하게 내년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옷을 챙겨입고 집 앞 카페로 나왔다. 

 

올해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기억력이 좋지 않은 탓에 연말에 한해를 돌아보기가 굉장히 아득하고 막막하다. 이럴 땐 아이폰 사진첩과 인스타그램 기록을 참고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1월과 2월은 체감상 작년처럼 기억되는 일들이 사실은 올해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기록들로 가득하다. 작년부터 배워오던 보컬레슨을 그만둔 것이 2월 언저리였다는 사실이 놀랍다. 노래를 안 부른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느낌인데도, 사실은 고작 10개월 지났을 뿐이다. 개인 PT 샵을 떠나서 새로운 헬스장에서 혼자 운동을 시작한 것이 6월, 고작 6개월 전이다. 이 또한 작년 일인 것 같은데... 2023년 해놓은 게 없었던 것 같다는 섣부른 생각을 그제야 고쳐먹는다. 

 

올 한해 운동은 웨이트 트레이닝과 볼더링을 병행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이 메인, 볼더링은 친구와 함께 취미로 진행했다. 둘 모두 올해 중반까지는 꾸준히 진행했으나, 9월 즈음 부터는 꾸준히 하지 못했다. 올해의 아쉬웠던 부분 중 하나. 12월에 들어와서 집 앞 새로운 헬스장에 등록했고 몇 번 운동을 진행해 본 바 느낌이 괜찮으니 2024년은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운동능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해로 만들자고 다짐한다. 

 

배움에 있어서는 1년 내내 일본어 화상수업을 진행한 것이 뿌듯하다. 고작 매주 토요일 한 시간 진행일 뿐이고 그 외에 공부를 따로 하질 못해서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지만, 올해 두 번의 일본 여행에서 여행자로서는 충분한 정도 수준이라는 것을 확인하니 동기부여가 된다. 일본어는 내년에도 꾸준히 해볼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일본어와 더불어 여행 예정지의 언어를 한두 달씩 배워보면 풍성한 삶이 되지 않을까 해 실천을 해보려고 한다. 2월 태국-라오스 여행이 잡혀있어 1월부터 간단한 태국어 수업을 신청했다. 몇 번 해보면 의미가 있는 일일지 없는 일일지 판가름이 날 것 같다. 일단 해보자. 

 

여행만큼은 다른 어떤 해보다 풍성하게 다녀왔다. 짧은 국내 여행은 5번, 해외 여행은 3번이다. 해외여행은 횟수는 많지 않지만 6월 유럽 여행의 경우 2주를 꽉 채워 다녀왔고, 두 번의 일본 여행은 각각 9일, 6일간이었으니 약 한 달을 해외에 있었던 셈이다. 국내 여행지는 동두천, 대전, 동해시, 제주도, 천안이다. 평생 국내 여행을 하지 않다가 코로나 시절 마음이 답답해서 시작한 것인데, 이제 대략 어떤 마음가짐으로 돌아다녀야 국내 여행에서 나름의 재미를 얻을 수 있는지 알 것 같다. 해외 여행은 짧게 다녀온 타 국가 도시를 제외하면 크게는 독일과 일본 두 나라를 위주로 다녀온 셈인데, 이것도 예전에는 없던 방식의 여행이었다. 시간과 돈에 쫓기지만 않는다면 느긋하게 한 나라를 길게 여행하는 게 내 취향인 것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을 만드는 2024년을 보내보자. 

 

그리고 이 여행을 다녀온 기록을 엮어서 여행 영상을 15편 만들었다. 만들어두고 보니 내 스스로도 여행을 기록하는 기분이 좋아서 앞으로도 꾸준히 제작해 볼 예정이다. 이 영상을 제작할 때부터의 목표는 '너무 공을 들이지 않는다.'였기 때문에 큰 발전은 앞으로 거의 없을테지만... 나레이션을 넣어보면 어떻겠냐 하는 주변의 권유가 있어 내년에는 그것을 시도해보기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얻기 위한 영상이 아니라는 기조는 앞으로 유지할 생각이다. 내 주변 사람들이 가끔 보면 그뿐이다.

 

업무에 있어서도 나쁘지 않은 한 해였다. 상반기에는 일과 삶의 균형을 잘 맞출 정도로 적당하게 일을 했고, 하반기에는 업무량이 확 많아졌었지만 12월 즈음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9월부터 11월까지는 일 외에 다른 삶을 살기 어려울 만큼 일이 바빴지만 이 상황을 만드는데 내 여행계획이 한몫했기 때문에 자업자득이라고 본다. 매번 업무량을 조율하는 데 공을 들이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프리랜서의 삶이겠지.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크고 작은 일들 모두 합해서 총 129개의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무리 지었다. 감사하게 항상 꾸준히 맡게 되는 일도 있고, 새로 꾸준히 진행하게 되는 프로젝트들도 있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2024년에는 새롭게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비율을 좀 늘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관성적으로 진행하는 일들은 마음이 편하지만 동시에 나를 제자리에만 머무르게 만드는 느낌이 든다. 이건 역시 내 스스로 마음가짐을 잘 챙겨야 하는 평생의 과제다.

 

문화적으로는 풍성하지 못한 한해였다. 외적으로 일이 바빠진 하반기 탓도 있지만, 대체로는 내 스스로 영화나 전시에 대한 소비욕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 느껴진다. 올해 업무와 관계없이 내가 시간을 따로 빼서 본 전시가 거의 없고, 영화관에 가는 횟수가 매우 줄어들었다. 꼭 영화와 전시를 봐야만 문화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대체할 만한 다른 영역을 개척하지도 않았으니 반성할 부분이다. 독립출판물이나 음악, 드라마, 게임 또한 익숙한 맛만 찾아서 즐긴 것 같다. 새로운 감상을 만드는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에 좀 더 힘을 써야겠다.

 

경제적으로는 회복에 충실한 한해였다. 작년 일부러 일을 많이 하지 않아 올해까지 이어진 경제적 타격을 연초에 잘 회복했고, 여러 번의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 만큼의 돈은 벌어냈다. 열심히 일한 만큼 현재 잔고가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여행을 자주 갔고 산 물건도 많은데 돈이 많이 남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다. 

 

새해 계획을 일부러 세우는 편도 아니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편은 아니지만, 올해 연말은 살다 보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어 그것들이 내년 목표가 되어버릴 것 같다. 배움에 시간과 노력을 쓰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내년에도 몇 가지 배움을 얻어볼 예정이고, 업무적으로 필요한 환경들이 낡고 불편한 감이 있어 새로운 업무환경을 갖추는데 돈을 좀 쓸 예정이다. 막연히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팀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올해 개인 작업에는 큰 성과가 없으니 내년에는 뭐라도 하나 결과물을 만들어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멈춰있는 이미지(사진), 움직이는 이미지(여행 영상), 텍스트(이 블로그) 모두 꾸준히 활용하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2023년 12월 30일에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