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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3] 뒤셀도르프로 가는 ICE기차 복도에 기대 앉아서 적는 글

서곡 2023. 6. 18. 16:10

유럽에 갈 때마다 언젠가는 겪게 되고야 마는 그 경험이 여행 첫날 첫 기차 예약에서 벌어졌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뒤셀도르프행 기차 출발시간까지 남아있는 두 시간을 어디서 보내야 할지 걱정하고 있을 때 도착한 한 통의 메시지. '당신의 기차는 앞선 스케줄 때문에 1시간 30분이나 딜레이되었답니다. 소중한 여행의 저녁식사 한 끼가 야식으로 미뤄지게 되었지만, 우리는 환불도 해줄 수 없어요. 당신은 제일 싼 표를 구매했기 때문이지요.' 주관적 해석을 곁들이자면 대충 그렇다.

 

대략 3분간 짧지만 치열한 고민을 마친 후, 지금으로부터 제일 빨리 출발하는 뒤셀도르프행 티켓을 추가 구매해서 바로 기차에 올라 탔다. 다행히도 현재의 나는 출국 전날 밤까지 빠듯하게 마감 일정을 지켜내고 온 '입금될 것이 남아있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86유로, 세 시간 정도를 벌자고 쓰기엔 아까운 돈인 것도 맞지만 몇 년 만에 온 유럽 첫날 저녁을 이렇게 날려버릴 순 없어.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에서 13시간 동안 내 왼쪽 자리에 앉아계셨던 분은 단체여행을 떠나는 50대 정도의 아주머니였다. 추진력이 좋은 다른 친구분의 노력으로 원래 내 옆자리였던 다른 승객과 출발 직전에 자리를 교체할 수 있었던 그 아주머니는 자신의 일행들과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더니 갑자기 나와 내 오른쪽 승객(외국인)에게 레몬 사탕을 하나씩 주었다. 비행기에서 먹을 레몬 사탕을 가져와서 옆자리에 나누는 사람은 평소에도 잘 챙기는 삶을 사는 사람이겠지. 그분과 정반대로 내 오른쪽 외국인 남성은 비행 내내 조용히 잠을 자는 사람이었다. 앉은 상태로 양질의 잠을 자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평생 부러워할 사람이면서, 첫 번째 기내식이 나왔을 때 조용히 내 어깨를 치더니 손을 대지 않은 초콜릿케이크를 먹겠냐며 물어본 사람이기도 하다. 둘 모두가 다른 방식으로 귀엽다. 근데 이게 진짜 귀여운 사람들인지 오랜만에 유럽에 가는 내 마음이 푸근해져서 세상 모두가 귀여워 보이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입국심사를 위해 대기 인파 속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귀에 들려온 어떤 한국 여행 가이드의 -100번도 더 말했을 가이드용 농담일 것이 분명한- '독일이 나라가 잘살면 뭐 해요~ 한국이었으면 벌써 다 처리되고도 남았을 텐데요, 그쵸?'는 절대 귀엽게 들리지 않았으니 너무 여행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달리는 기차의 창을 통해 보이는 하늘만은 귀엽게 맑아 보인다. 이런 날들이 계속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