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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생략)

서곡 2023. 2. 13. 21:52

선생님에게 아쉽지만 수업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전하며, 수업이 가능한 스케줄을 만들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둘러댔지만 사실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작업실 월세와 전세대출 이자율, 공과금과 택시비가 한 번에 올라버린 상황에서 1년을 채우고 그만두고자 했던 몇 가지 수업 중 지금 그만두어도 물거품이 될 것 같지 않은 수업은 역시 보컬 레슨뿐이었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하지 않아서 고른 것이 아니라 언제든 원할 때 다시 즐겁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수업을 신청하면서 원했던 목표 <역류성 식도염으로 저하된 발성 능력의 재활>도 이뤄낸 지 오래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노래 부르는 게 좋다고 말하면 다들 '노래를 잘하나 보다.'는 답도 없는 기대를 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웬만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나는 노래 부르는 게 좋다. 학창 시절 몇 안 되는 방과 후 선택지에서 나는 PC방과 노래방을 자주 고르는 학생이었고 그 역사가 지금까지 계속되어 나는 여전히 게임을 좋아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어른으로 살고 있다. 노래에 관한 내 욕망은 노래하기를 넘어서 궁극적으로 음악을 연주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음악가에 대한 열망이기도 한데, 그것이 살면서 지금껏 여러 번 악기를 배워보려고 도전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기타든 피아노든 그것을 도전할 당시에는 뚝딱거리며 몇 곡 정도는 외워서 연주할 수 있기도 했는데... 현재 시점에 이르러서는 결국 아무 능력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노래만 할 수 있는 어른일 뿐이다. 언제든 코인노래방에 들를 수 있게 지갑에 이천 원 정도의 지폐를 숨겨놓는 어른. 코인 노래방이 지금처럼 번성하지 않았다면 학생 요금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어른은 노래 부르기의 기쁨을 충분히 영위할 수 없는 팍팍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참 다행이다.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즐거움을 위해 하는 행동을 취미라고 정의한다면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가끔 하는 요리도 그렇고, 지금 내가 하고있는 글쓰기도 그렇고, 길고양이 사진찍기나 일본어 공부마저도 말이다. 하지만 결과물과 전혀 관계없이 순수하게 과정이 즐겁기 때문에 계속하게 되는 것이 취미라고 정의한다면 내겐 그것은 단연코 노래다. 앞서 언급했던 게임 또한 과정이 즐거운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노래만큼은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게임마저도 어느 정도 '성취'에서 오는 뿌듯함이 그 장르의 즐거움 파이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서사의 마지막을 보는 것, 어려운 난이도를 클리어하는 것,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 같은 성취가 없다면 게임을 즐기는 원동력 중의 꽤 큰 부분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다. 하지만 내게 노래라는 것은 다른 객관적인 성취가 없더라도 그 과정에서 오는 기쁨이 압도적으로 크게 느껴지는 일이다. 노래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도, 완창하기 힘든 노래를 1절만 불러도, 정말 가끔은 노래를 들으며 그것을 부르는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것은 꽤 인생의 축복일지도 모른다. 

 

약 10개월간 이어진 수업에서는 죠지의 <바라봐줘요>, 크러쉬의 <우아해>, 정승환의 <보통의 하루>와 <너였다면>, 지소울의 <Natural>, 나얼의 <한번만 더>, 김진호의 <가을이 오면> 등을 연습했다. 역류성 식도염을 1년 동안 앓은 후에 갑자기 나오지 않았던 가성 발성을 다시 회복하는 데 성공했고,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윤종신, 김동률, 정준일식 발성을 좀 더 요즘 R&B풍으로 바꿔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얼추 감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입으로 내는 발음 세기를 줄이고 좀 더 횡격막의 힘을 이용해 소리를 머리의 뒤와 위로 보내는 방법을 연습해 나가야 한다는 목표도 생겼다. (*이 부분은 전문 용어를 몰라 글로 제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음) 당분간 배울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익혀 놓은 기술들을 편안하게 몸에 안착시키는 연습을 하면서 지금보다 더 가열차게 코인 노래방으로 가야겠다. 지속적이고 본격적인 취미생활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