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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오는 타투

서곡 2022. 3. 21. 22:57

2주 전 갑작스레 지금을 기록해야겠다는 강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세 번째 타투 예약을 했다. 결심 시점은 다소 충동적이었으나 새기고자 한 내용은 꽤 오래전부터 머리 한구석에 생각해오던 것이었기 때문에 피부 한 켠 마음에 드는 삼각형을 하나 새길 수 있었다. 삼각형이 탄생한 의미를 짧게 설명하면, 늦은 독립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나와 살게 된 첫 지역의 이름 어원인 '가장자리'를 담아 의뢰한 도안이다. 처음, 그리고 의미 있는 공간. 그러고 보니 공교롭게도 내 세 개의 타투는 모두 그 두 가지 키워드를 담은 비슷한 크기의 아이콘들이다. 계획한 것은 아닌데 몸에 새길만한 의미를 찾고 이미 새긴 것들과의 조화를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리고 있다.

첫 타투는 아마도 2018년, 하지만 새긴 것은 그 당시의 것이 아니라 2009년 즈음에 스케치해놓은 간단한 로고 이미지다. 로고라기보다는 도형에 가까운 것으로, 그 당시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이름이 JSK STUDIO(대문자인 것이 웃긴 점)였는데, 그 당시 학부 1~2학년생으로 미래에 대한 겉멋이 잔뜩 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려놓은 미래 스튜디오의 아이콘 인 것이다! 심지어 그 당시에는 내가 지금처럼 사진을 찍으며 살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도 못했고, 일러스트나 디자이너로서 살아갈 줄로만 알았었다. 하지만 그 당시 왠지 '초심'이라는 키워드를 되새기고자, 그 부끄러운 것을 새기자고 결정했던 것 같다. 흐린 기억이지만 그 당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3년 정도 지나면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되는 일 사이에서 고민을 했었기에 그렇게 생각이 흘러간 것 같다. 그 로고를 만들었을 당시의 미니홈피 이름이 지금도 인스타그램 아이디로서 살아있으니까 의미 있는 구간을 잘 선택한 것 같고.

두 번째 타투는 그다음 해인 2019년에 새겼다. 이것은 그 당시 운영하고 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포장과 수습'이라는 작업실을 나타내는 레터링의 피읖 부분을 새긴 것으로, 나름대로 디자이너 친구에게 의뢰해서 받은 레터링 자체를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에 한결 더 고민 없이 결정해서 새긴 것이다. 이 타투의 재밌는 점은 첫 번째 타투와 같은 친구가 시술해줬었는데, 그 친구의 타투 작업 초창기에 했던 첫 타투와 다르게 바로 옆에 새겨진 두 번째 타투는 완성도의 차이가 확실히 보인다는 점이다. 바로 그 부분이, 멋모르고 그려놓은 2009년 즈음의 도형과, 10년쯤 지나서 운영하는 작업실 로고의 의미와도 얼추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서 내 마음속으론 꽤나 좋아하는 포인트가 되었다. 처음 뭔가를 해보고자 했을 당시의 어설픈 마음과 어찌저찌 구색은 갖춰가는 듯한 시점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는 의도치 않은 오류.

그리고 3년이 흘러 세 번째 타투를 새긴 것이니, 아직까진 의미 있는 시공간을 잘 선택해서 피부에 남기고 있다는 기분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다 아문 새 타투를 보고 있으면, 이다음은 무엇일까를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앞으로 몇 년 후에 다시 타투를 새기고 싶어질때, 내가 남길 그 시공간은 대체 어떤 느낌일지, 그 때 그 순간에 고른 아이콘도 후회 없이 고를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그다음을 기대할 수 있도록.

오늘 '참 손길 지압 힐링센터'의 담당 안마사분이 내 굽은 등과 틀어진 골반을 발견하곤 말했다. '그래도 30대에 발견해서 다행이지, 이제부터 고쳐나가면 되니까. 늦게 발견하면 더 힘들어요.' ... 그렇지요, 그렇게 계속 살면서 고쳐나가면 언젠간 그럴듯한 사람이 되어 있겠지요? 다음에 오는 타투를 새길 시점에는 어쨌든 좋은 방향으로 달라져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