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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의 슬픔과 슬픔

서곡 2022. 9. 13. 21:30

숏폼 컨텐츠의 시대다. 그렇다고들 한다. 무심코 설치해본 틱톡을 켰다가 정면으로 맞닥뜨린 유해함의 해일을 온몸으로 받아내 버리고선 잠시 누워 미래 세계를 상상했다. 이것이 정말 미래인가... 그렇다면 나는 이 흐름에 최대한 더디게 탑승해야겠다. 하지만 굳이 틱톡이나 릴스를 켜지 않는다고 해도 점점 짧아져만 가는 사람들의 인내심은 이곳저곳에서 드러난다. '숏폼'이라는 단어가 수면위로 떠오르기 전부터 조금이라도 문장이 긴 인터넷 텍스트의 댓글에는 '세줄 요약'을 바라는 댓글이 항상 존재했다. 영화의 내용을 몇 분 만에 요약해주는 유투버들이 즐비하고, 실제로 어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물어보니 영화 요약본을 봤다는 대답을 들은 경험을 실제로 겪기도 했다. 긴 컨텐츠를 짧게 요약하는 과정에서 증발해버리고야 마는 것들에 대해서 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경 쓰고 있지 않은 듯하다. 최근에 '맥락맹'이라는 개념이 자주 화두가 되는 것도 이 큰 흐름과 연관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다보니 요즘 들어선 정보 값과 정보 값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작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더욱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과연 내가 이 큰 흐름에 저항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언젠간 나 자신도 모르게 급류에 휩쓸려가고 말 것 같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짧고 실없는 컨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했고, OTT에 공개되는 드라마들도 호흡이 짧아져 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삶의 피곤함이 이런 컨텐츠를 소비하는데 확실한 면죄부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만에 여유시간이 난 이번 추석 연휴에 오랫동안 위시리스트에 담아두었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해피 아워>를 보려고 벼르고 있었지만, 결국 침대의 달콤한 유혹에 못 이겨 보지 못하고 누워서 유투브나 멍하니 본 것이 변명의 여지 없는 자기 증명이다. 5시간짜리 영화의 허들이 높게 느껴지는 것을 숏폼 컨텐츠나 세줄 요약 시대 탓이라고 한다면 너무 비약이 심한 거라고 말한다 해도... 당장 페이지 수가 많은 책은 읽을 생각도 안 하게 된 지 꽤 되었으니까. 이미 만들어진 것을 감상하지도 않게 된다면 내가 창작자로서 긴 호흡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부끄럽지만 약 5주 만에 이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이 행위가 내 나름의 저항운동이다. 긴 글을 읽을 때 나 자신도 모르게 문장을 대충 읽고 건너뛰다가 문단의 끝에 이르러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서 앞 문장을 다시 읽는 일이 잦아질 때마다 '아 글 쓰는 연습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블로그를 찾는다. 이곳에 목적 없는 긴 글(내 기준이다.)을 써서 차곡차곡 쌓아놓는 것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고자극 세줄 요약 세상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기를 바라면서 소박한 크기의 방망이를 깎는다. 깎아놓고 보면 방망이가 아니게 될 수도 있지만, 그건 그 나름대로 재밌는 일이 될지도 모르니까.

 

세줄 요약

숏폼 컨텐츠만 소비하는 사람 되긴 죽도록 싫고

인터넷에 넘치는 문해력 떨어지는 맥락맹이 되지 않기 위해서

시간 날 때마다 여기에 글 써볼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