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 것들 #08
일 하느라 (비어버린 잔고를 채우느라) 평소보단 많은 것을 보고 즐기지 못했던 한달이었다.
음악
01. DOMi & JD BECK - NOT TiGHT
다른 플레이리스트에서 나왔던 어떤 싱글 (제목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을 듣고 아티스트 이름에만 라이크를 찍어두었던 팀이었는데, 얼마 전 새로 발매한 게 있나 무심코 찾아보다가 6월에 정규앨범이 나온 것을 발견하고 듣기 시작했다. 알아보니 앤더슨 팩의 회사에서 처음으로 발매한 앨범이라고. 재즈라고 장르가 표기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위에 락이나 힙합의 비트를 뒤섞은 종류의 음악이다. 비트가 수시로 바뀌고 멜로디 라인도 예측하지 못하게 진행되다 보니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은 아니지만, 배드배드낫굿 음악을 처음 들을 때 그랬었듯 귀에 한 번 익숙해지고나면 즐겁게 듣게되는 종류의 음반이다. 앞선 이유와 마찬가지로 촬영 중이나 작업 중에 BGM으로 틀어놓기에는 다소 난해한 구석이 많은 음반인 점이 개인적 아쉬움 포인트.
02. Lea Kampmann - If I ever made you cry, I'm sorry
Domi & JD BECK 처럼, 아티스트 이름만 체크해두고 한동안 찾아보지 않던 아티스트 두 번째다. 올해 2월에 발매했던 앨범. 약간은 라나 델 레이의 초창기 음악 느낌을 주는 어두운 느낌의 보컬과 사운드를 들려준다. 귀를 사로잡는 단 한 곡의 트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앨범 전체가 하나의 분위기를 꾸준히 지향하는 앨범. 점점 해가 짧아지고 서늘해지는 요즘 어울리는 앨범.
03. Calvin Harris - Funk Wav Bounces Vol. 2
오래도 걸렸다. 볼륨 1 앨범에서 장장 5년이 걸려 후속 앨범이 발매되었으니까. 볼륨 1은 여름 하면 떠오르는 앨범이라 매년 더울 때마다 계속 들었는데, 이제 이 앨범과 같이 동시에 트랙 리스트에 올라갈 것 같다. 물론, 한국 기준으론 이제 여름이 다 끝나버린 시점에 발매된 게 아쉽기는 해도...
04. Shenseea - ALPHA
위의 캘빈 해리스 앨범 중, Obsessed 트랙에 피쳐링으로 참여한 아티스트들을 확인하다가 발견한 앨범. 가사가 어떻고 랩 실력이 어떻고를 떠나 왠지 모르게 이 뮤지션의 발음과 목소리가 기분 좋아서 찾아봤다. 뮤지션 정보를 보면 자메이카 억양의 발음인 것 같다. 오래 듣게 될 음반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엔 즐겁게 듣고 있다.
05. 죠지 - 1집 수록곡
빨리 정규 1집 내주시고, 음원 사이트에 등록된 프로필 사진(화장실 사진)은 다시 한 번 생각해주세요.
06. 마콤마 - Prologue
단 하나의 트랙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신해경과 사뮈 두 아티스트가 팀을 이뤄서 앨범을 낸다는 것으로 관심이 갔더랬다. 두 아티스트 중 신해경 쪽을 더 많이 들어온 편인데, 아무래도 신해경의 음악이 좋게 표현하면 톤이 일관적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거기서 거기인 느낌이 항상 들어 발매한 음원들을 틀어놓았을 때 지루하게 느껴지는 점이 항상 아쉬웠었다. 하지만 그런 일관성이 이번 마콤마의 싱글에서는 좋은 의미로 드러나지 않는다. 팀으로서 제작하는 정규앨범은 어떤 느낌이 될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
영상
01. 큐어
오랜만에 영화 속으로 잠시 빨려들어 간 듯 느껴지는 작품을 본 것 같다. 1997년도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군더더기 없고 적절한 연출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선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 관한 내 감상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곡성에서 좋다고 생각했던 지점들이 대부분 이 영화에 이미 다 존재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작이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필모그라피 중 처음으로 본 영화인데, 앞으로 좀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02.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프로파일링이 한국에 처음 도입될 당시를 소재로 한 드라마. 동명의 논픽션 에세이가 원작이다. 하지만 역시 시놉시스만 듣는다면 '마인드 헌터'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비교하면서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감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내용으로 너무나 잘 만들어진 선배 격 작품(다음 시즌 제작 안 되나요?)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 기본적으로는 충실하게 잘 만들어진 장르물이고, 완성도에 비해 너무나 주목을 못 받은 것 같아 아쉬운 작품이다. 주연들의 연기가 훌륭하고 특히 김소진 배우의 발성과 발음이 너무 좋다. 이 밖에 장점이 많지만, 단점이야기도 해보자면 - 불필요하게 범죄 장면을 불필요한 수준으로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서 서스펜스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점, 공성하 배우가 연기한 기자의 역할이 그저 도덕적 교훈을 환기하는 용도로만 단편적으로 소모된다는 점. 그리고 너무나 개인적인 불호 지점이라면 화면의 언샵마스크 효과 (영상쪽에선 어떤 용어일지 모르겠다) 시종일관 너무 강하다는 점. 이런 유행은 오래전에 지나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매번 들었다. 좀 투덜대긴 했지만 그럼에도 완성도에 비해 과소평가 받은 좋은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03.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화를 보고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제일 큰 원동력은 박은빈 배우와 주현영 배우의 연기력이다. 특히나 박은빈 배우. '착한 드라마'인 이 작품에서 어쩔 수 없이 등장인물들은 평면적인 연기를 펼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조건 안에서도 뻔해 보이지 않게 연기를 해내는 점이 대단했다. 시즌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보긴 했지만, 역시 1화부터 10화 정도까지의 완성도가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보기 편한 드라마로서의 재미와, 무겁게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한화마다 계속 던져주는 점이 그렇고, 법정 드라마로서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상반되는 의견의 무게를 의도적으로 애매하게 다루어 도덕적 판단의 결론을 시청자에게 슬며시 미뤄주는 균형감도 좋았다. 후반부에는 러브라인과 출생의 비밀 떡밥 회수를 위해 법정드라마적인 쾌감을 희석시키는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서 다소 아쉽다. 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확 깰뻔한 대사들이 몇 개 등장했을 때 참기 힘들었는데, 시즌 초반에 나왔다면 높은 확률로 그만 보게 되었을지도...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다음 화를 기대하면서 봤던 한국 드라마였다. 시즌2에는 법정 싸움이 좀 더 치밀하게 그려지길. 안 그럴 것 같지만.
게임
01. 엘든 링
어떤 게임을 해도 그저 그렇다고 느껴지는 이른바 '게임 불감증'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프롬의 '소울 시리즈'를 찾는 편이다. 그런 사람에게 엘든 링을 플레이했던 시간은 정말 즐거운 시간일 수밖에 없다. 본작에 새롭게 등장한 요소들은 대부분 유저 편의성에 관련한 신기능 들인데, 덕분에 난이도는 꽤 내려간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재미'인 전투 시스템은 유지하고 있어서 적당한 긴장감으로 내내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많은 보스와 적들, 지역의 구성이 반복되는 느낌이 들었어도 그게 아쉽지 않고 클리어할 구석이 많아 즐거웠을 정도. 정규 시리즈처럼 난이도가 더 높았다면 이 정도 많은 분량의 컨텐츠를 즐기지 못하고 나가떨어졌을지도. 그간 했던 모든 소울시리즈를 통틀어서 제일 공략을 찾아보지 않고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픈 월드라 더 알 수 없어진 퀘스트 라인 길 찾기 정도만 보고 진행한 것 같다. DLC 컨텐츠에 대한 발표가 없는 것이 아쉬운데, 세키로를 제외하면 소울 시리즈가 항상 DLC 지역을 발매해줬던 걸 보면 이번에도 발매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