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을 그리는 손짓
어떤 음악가 A의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이었다. 그 음악가 A는 이미 거의 20년간 음악을 해오고 있는 사람으로, 그의 공연은 화려하지 않고 단촐했지만 동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그야말로 좋은 공연이라 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음악과 음악 사이 빈공간엔 과하지 않은 농담을 곁들인 이야기들이 자리 잡고 있는 매끄러운 공연. 몇 가지 앨범 수록곡을 소화하고 났을 즈음, 그 음악가 A는 자신의 앨범에 피쳐링으로 도움을 준 다른 뮤지션 B를 소개하며, 그를 무대 위로 안내했다. 나누는 대화로 유추해보건대 아마도 갓 스물 즈음이 되었을 그에 대한 몇 문장의 인사와 소개가 지나간 후, 두 사람은 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귀로 음악을 들으며, 눈으로는 무대 위의 여러 작은 요소들을 주목해보다가 이윽고 시선이 뮤지션 B의 손끝에 닿았고, 그 이후론 그 곡과 다음 곡이 끝날 때까지 그의 미묘한 손짓을 보고 있었다. 그 모양은 목소리에 실리는 힘의 양과 방향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듯 보였다. 약간의 움직임에도 출렁거리는 아날로그 저울 눈금 위 바늘처럼.
수많은 뮤지션이 노래하는 모습(의 영상)을 봐왔고, 나조차도 취미 삼아 노래를 부를 때 자연스럽게 손과 몸이 움직이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왜 그 뮤지션 B의 손짓이 새삼 멋지다고 느꼈을까? 공연에서 돌아오는 길 위에서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소한 의문이 그렇듯 며칠의 시간이 흐르고 한가한 평일 오전 '썸머 필름을 타고!'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영화의 후반부, 좋은 의미로 당황스럽게 펼쳐지는 액션을 보던 중에 갑작스레 며칠 전 무대에서 보았던 뮤지션 B의 손짓이 자연스레 떠올라 영화 장면들과 겹쳐 보였다. 그때의 그 차분한 무대와 지금 눈앞의 이 영화의 뜨거운 에너지의 온도는 전혀 다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 그 공연에서 그 손짓을 바라보던 나는 사실 계산되지 않은 순수한 에너지를 발견하고 좋아했던 게 아닐까. 설령 그 손짓에 대한 나의 감각이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든 사람들이 10대와 20대의 이야기만 좇는 것은 역시 이상하다'라고 강력하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지금도 조금은 그렇다. 기형적으로 10대의 성장 서사를 추구하는 (대개 일본발) 컨텐츠들의 목적성을 보면 징그럽게 생각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 영화', '젊은 아티스트' 등의 서사에 내가 가끔씩 속수무책으로 홀려버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들에서 흘러나오는 순수한 에너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맹목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 언젠가는 나에게도 있었던 것 같은 그 에너지를 다시 감각하고 싶은 욕심이 남아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 공연에서의 그 손짓, 그 영화에서의 그 액션. 비록 신기루 같은 순간일지라도 나에게 다시 찾아오기를. 내가 좋아하는 모든 친구와 모든 창작자에게는 더 많이 찾아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