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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고 기억하기

서곡 2022. 5. 2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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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유어마인드에 들러서 신간들을 둘러보다가 마땅히 끌리는 책이 없어 나온 지 오래된 작은 책을 하나 골라 들었다. 여러 해 전 독립출판 프로젝트에 같이 참여했던 J씨가 만든 책이었는데, 프로젝트는 1년 정도 진행했을 뿐이고 그 이후로 몇 번 만난 적은 없지만 SNS를 통해서 그분이 올렸던 사진들과 글들을 자주 챙겨보고 있던 차였다. 새 책에 관한 글이 올라올 때마다 봐야지 봐야지 생각만 하고 몇 년이 흘러버렸다는 것을, 어째선지 유어마인드에 갔던 그 순간에 떠올리곤 그 책을 구매했다. 작업실로 돌아와서는 잘 보이는 곳에 마련해 둔 '읽지 않은 책들' 더미 제일 위에 올려두었다. 책을 산 김에 한 번 안부 DM이라도 보내볼까 생각했지만 역시 이런 생각들이 대개 그렇듯 생각으로만 끝났다. '이미 나온 지 한참 된 책인데 책을 샀다고 연락하긴 뭐하지, 다 읽고 나서 생각하지 뭐'. 그리고 얼마 전까지 그 책은 그 자리에 올려둔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고 나는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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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전, 아침에 예상보다 이르게 잠이 깨서 뒤척이다 반쯤 뜬 눈으로 트위터를 켰고, J씨의 부고 트윗을 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분명히 얼마 전까지 올린 사진을 본 것 같은데. 멍하게 내가 보았던 사진과 글을 몇 개 읽다 말고 그 자리에 누워있었다. 나도 모르게 다시 잠에 들었다 깨서 다시 확인했는데, 부고는 그대로였다. 꿈은 아니구나. 부재중 연락으로 시기는 다르지만 같은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S씨의 전화가 와있었다. 정말 꿈은 아니군. S씨와 잠시 통화를 하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오늘은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겠다. 부질없이 천장을 바라보며 삶과 죽음에 대한 (결론은 절대 나지 않을) 생각들을 떠올리다가 작업실에 놓아둔 작은 책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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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책을 읽었다. J씨가 살아왔던 집들에 대한 경험을 쓴 글이었는데, 마지막 글인 열한 번째 집은 여러 해 전 같이 프로젝트를 할 때 초대받아 팀원들과 놀러 갔던 그 집이었다. 그때의 기억을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원래 기억력이 그렇게 좋지 않은 터라 생각나는 게 별로 없었다. 다소 특이했던 그 집의 구조, 현관의 풍경들이 생각났고 이 집이 꽤 마음에 든다던 J씨의 말이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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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씨와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시기는 2013년으로, 내가 막 군 휴학을 끝내고 복학해서 여러 가지들을 닥치는 대로 해보려던 시기였다. 아직 내가 뭘 해나가야 할지 모르는 채로 시간을 흘려보낸 후, 그 반작용으로 에너지와 의지만 가득하던 2학년 대학생이 바라본 J씨는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미 잘 아는 멋진 사람이었다. 같이 작업했던 프로젝트가 끝나고 SNS로만 소식을 듣던 그 이후 기간에도, J씨는 자신이 좋아하고 귀여워하는 것을 계속해 찾아다녔고 촬영하고 그에 대해 글을 써나갔다. 그 모습이 멋져 보였다.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갈 줄 아는 사람이라고 감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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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했던 팀원들과 함께 J씨가 있는 봉안당에 와서 인사를 하고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J씨가 그의 글을 위해 내가 촬영한 사진을 두고 조심스럽지만 동시에 힘있게 이 건물 사진의 수직 수평을 수정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나의 이상한 고집 - 전형적인 건축 사진처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던 고집- 때문에 거절했던 것도 같이. 그 대화 이후로 수년이 지나 지금은 내가 습관적으로 사진 촬영본의 수직 수평을 교정하며 작업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 요청에 대한 나의 의문이 어떤 식으로든 지금에 영향을 주고 있지 않나 싶다. 항상 돌이켜보면 그렇다. 돌이켜보지 않아도 알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