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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화를 위해서.

서곡 2022. 3. 13. 23:13

몇 주째 마음의 부침을 겪고 있다. 다행히도 나와 관계없이 잘만 흐르는 시간과 너무나 감사한 주변의 도움을 받아 한 겹씩 수면을 향해 올라오고 있긴 하지만,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팔다리를 멈추고 수면 아래로 다시 내려가려고 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당연하게만 생각해오던 가치관을 지탱하는 지지대가 한번 크게 휘청여서, 이것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지 하나하나 점검을 해봐야만 하는 시점이 와버렸다. 잘된 일일 수도... 있는 걸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이전과 이후의 내가 조금이라도 달라져야만 할 것 같다는 묘한 목적의식은 생겼다. 나는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 걸까? 33년째 살아가게 되었는데 조금도 알 수가 없다.

 

감정이 최악으로 치달았던 어떤 순간에, 그 감정의 종착지에 있던 것은 억울함이었다. 방향이 없는 억울함. 신을 믿지 않는데도 마치 억울함을 표현할 존재가 있는 것처럼, 나는 왜 이렇게 되었냐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그 모든 감정선의 종점이었다. 그런 감정이 나에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말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내 머릿속을 뒤흔들었던 그 생각들은 도대체 내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되묻게 했다.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대체 좋은 사람이란 뭐란 말인가? 지금까지 생각한 그 어렴풋한 좋은 사람의 형상, 그게 정말 맞다고 생각해? 아닌 것 같은데 왜 아닌지도 알 수 없고, 아니라면 그 대안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혼란스러운 마음. 

내가 어렴풋하게 생각 하고있는 '좋은 사람'은 대체 무엇일까, 현재까지의 결론은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의 어떤 컴플렉스의 반대 지점이기도 하다. 좋은 대화를 위해서는 좋은 생각, 좋은 경험, 좋은 지식을 알아야 하고, 타인을 이해할 줄도, 배려할 줄도, 실없이 너스레를 떨줄도, 동시에 차분하게 깊은 이야기를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냥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문득 떠올랐고 그 이후로도 계속 생각을 해보았지만 다른 형태가 떠오르지 않았다. 당분간은 이걸로 해야겠다. 나는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하나? 그걸 이제부터 생각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