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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를 기다리며

서곡 2022. 4. 14. 16:57

위고는 '이위전의 고양이'라는 뜻이다. 이위전은 사람 이름이고, 내가 지금 잠시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집의 주인이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는 집에 앉아서 커피와 함께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소리다. 이 위고라는 친구는 겁이 많고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아서 (대개 고양이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 같이 보여도 조금이라도 부시럭 거리면 바로 귀를 쫑긋거리며 몸을 움찔거리기 때문에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최대한 작은 몸짓으로 행동해야 한다. 평생 고양이의 요주의 경계대상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작은 노하우는, 최대한 고양이님에게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게 조용히 지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점이다. 한때는 괜히 쓰다듬고 장난치고 싶어서 좋아한다는 간식이나 장난감을 미끼로 먼저 다가가곤 했는데, 성격이 정말 좋은 고양이가 아니라면 그 결과는 대부분 하악질로 끝나게 되고 나를 경멸하는 고양이의 눈빛을 견뎌내다 집에 돌아오게 되버리기 때문에 지금은 최대한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이다. 조신하게 있으면서 경계심이 풀린 고양이가 먼저 다가와서 다리에 몸을 비비고 가기를 바라면서. 이 한문단을 쓰는데 시간이 조금 흘렀는데도 아직 반경 1m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동물은 종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편인데, 유독 고양이에게는 묘한 애정 욕심이 있다. 이유를 찾자면 내가 고양이 알러지가 있어서 고양이는 평생 절대로 키울 수 없을 것이라는 슬픈 확신 때문일 것이다. 90년대 한국 발라드식으로 표현하자면 '가질 수 없는 것을 더 원하게 되는 마음'이 아닐까. 동물이고 사람이고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자라오면서 중고등학교 시절 집이 잠시 애견센터를 운영했었기에 강아지들은 정말 많이 만나봤고 놀아보고 키워보기도 했는데, 고양이는 그렇지 못한 데다가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으니 뭔가 애틋한 마음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강아지들의 경우에는 여기저기 산책을 다니기 때문에, 출퇴근길에 불광천을 걸어 다니면서 다양한 강아지들의 다양한 행복을 관찰할 수 있는데 고양이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스크 밑으로 슬며시 미소를 지으면서 줄이 팽팽해지고 몸을 비스듬하게 기울여 걸을 정도로 호기심이 많은 강아지들을 관찰하며 걷는 다소 음침한 산책자를 상상해보면 그게 나의 평소 출퇴근길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한 모습일 것이다.

 

세 번째 문단을 시작했는데 아직 위고는 저 멀리 있다. 지금까지 몇 번의 방문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오늘 밤쯤이 되어야 경계를 풀 것 같다. 몸에서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은은한 향기가 난다면 어떨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계속 위고를 기다린다. 제발 경계를 풀어줘!